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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228> 국민참여재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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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미국 영화나 드라마 속 법정 모습은 우리나라와 사뭇 다릅니다. 판사와 피고인, 변호사·검사 외에도 성별·나이·인종 등 다양하게 구성된 12명이 재판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변호사와 검사는 재판이 진행되는 내내 재판관이 아닌 배심원들을 향해 열변을 토하죠. 거스를 수 없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다가도, 때로는 감정에 격하게 호소하곤 합니다. 결국 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은 배심원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도입한 지 3년이 되는 국민참여재판을 더욱 활성화해 나갈 방침인데요. 아직은 생소한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알아볼까요.

홍혜진 기자

영화 ‘타임 투 킬(1996)’을 보셨나요. 어린 흑인 소녀를 잔인하게 강간한 흉악범이 벌금형만 선고받고 법정을 유유히 나섭니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총알이 발사되고, 범인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둡니다. 방아쇠를 당긴 것은 소녀의 아버지였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그는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됩니다.

모든 증거는 명백하게 소녀의 아버지가 살인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총을 난사하는 그의 범행 장면을 목격한 증인도 많습니다. 모두 백인으로 구성된 영화 속 배심원들도 처음에는 그가 유죄라는 확신을 안고 배심원석에 섭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무죄를 선고받습니다. 어떻게 가능했냐고요? “눈을 감아보세요. 잔인하게 강간당한 그 소녀가 백인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당신들의 어린 딸이 이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됐다면 부모로서 제정신일 수 있었겠습니까” 하고 묻는 변호사의 설득에 배심원들이 동의했기 때문입니다.

연내 320건 돌파 예상 … 참여 여부는 피고인이 결정

우리나라도 2008년 1월 1일부터 영화 속에서만 봐왔던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습니다. 재판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죠. 벌써 도입한 지 만 3년이 되어갑니다. 2008년 64건, 2009년 95건에서 올해는 161건으로 증가했습니다. 오는 31일이면 국민참여재판 실시 건수가 총 320건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아직 성과는 미미합니다. 대법원 통계(2008~2009년)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 대상인 약 1만1500건의 사건 중 4.9%(563건)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습니다.

국민참여재판 실시 여부는 재판을 받는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결정됩니다. 배심원의 평결을 받고 싶은 피고인은 공소장 부본을 송달받은 날부터 7일 내에 서면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해야 합니다. 제출하지 않으면 원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죠. 하지만 아직 첫 공판이 열리기 전이라면 더 고민해 보셔도 됩니다. 대법원이 “7일 이내에 의사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은 피고인도 제 1회 공판기일이 열리기 전까지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할 수 있다” 는 결정을 내렸거든요.

유·무죄 판단은 만장일치가 원칙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사건에 따라 선정된 5~9명의 배심원들이 만장일치로 평결을 내립니다. ‘평결’이란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을 내리는 것을 말하지요. 검사·변호인 측 증거 제시와 최종 변론이 끝나고 나면 배심원들은 별도로 마련된 방에 들어갑니다. 평결을 내리기 위한 토론 과정인 ‘평의’를 하기 위해서죠. 외부의 개입 없이 배심원단이 내부 토론을 통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출입은 철저히 통제됩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이 늘 통일될 수는 없겠죠?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할 때에는 평결을 내리기 전에 심리에 관여한 판사의 의견을 들어보게 됩니다. 이 경우 유·무죄 평결은 다수결로 정하게 되죠.

평결이 유죄인 경우, 배심원들은 판사와 함께 양형에 대해 토론하게 됩니다. 판사는 법적 지식이 부족한 배심원들에게 처벌의 범위와 양형(형량 결정)의 조건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줄 의무가 있습니다.

배심원들, 대체로 판사보다 너그러운 처벌 원해

전문성이 부족한 배심원단이 내린 평결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요? 조사 결과 2008~2009년 국민참여재판으로 처리된 사건의 72.1%가 항소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같은 기간 동안 전국 고등법원에서 일반 사건의 원심 판단을 받아들인 비율인 58.5%보다 훨씬 높은 것입니다. 형량 변경률도 22.1%로 전국 고등법원 일반 사건(32.9%)에 비해 낮았습니다. 국민참여재판 결과가 항소심에서 인정되고 상고심으로 올라간 경우에는 100% 원심과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이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조사 결과 2008~2009년 전체 국민참여재판 사건 중 배심원단의 평결과 판결이 일치한 경우는 전체의 90.7%였습니다. 평결과 판결이 불일치한 나머지 15건 중 13건은 배심원이 무죄 평결을, 재판부가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배심원이 유죄 평결을 내렸는데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사건은 2건에 불과했죠.

배심원들은 재판부와 같거나 더 가벼운 양형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양형기준제가 시행된 2009년 7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양형기준이 적용된 사건 38건 중 35건(92%)에서 배심원의 양형 의견이 양형기준과 일치했습니다. 2건(5%)은 배심원들이 더 낮은 양형 의견을 제시했죠. 이는 미국과 비교했을 때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배심 양형을 실시하는 대부분의 주에서 배심원들의 양형이 판사의 양형보다 더 높기 때문이죠.

만 20세 이상 누구나 배심원 후보 될 수 있어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배심원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각 지역 법원은 배심원 후보예정자 명단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재판 일정이 잡히면 배심원 후보들에게 출석 기일을 통보합니다.

출석을 통보받을 경우 통지서와 신분증을 챙겨 선정기일에 해당 법원으로 출석하셔야 합니다. 또 개인 정보 등에 대한 질문표에 답을 적어 제출하셔야 합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고 공정한 배심원을 뽑기 위해서죠. 답지는 재판이 끝나는 즉시 폐기되니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선정기일 판사와 변호사·검사는 증인 및 피고인과 가족관계이거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지, 사건과 관련된 경험이 있는지 등을 묻습니다. 불공정한 판단을 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배제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정기일이나 재판 당일날, 여러분은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불립니다. 신분을 보호하고 공정한 재판을 진행하기 위해섭니다.

시행 초기엔 무직자나 특정 직업군의 후보예정자들이 많이 출석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그러나 배심원은 성별·연령·직업별로 다양하게 구성됩니다. 2008~2009년 조사 결과 전국 법원의 참여재판에서 선정된 배심원과 예비배심원들 중 남녀 비율은 각각 52.2%, 47.8%였습니다. 연령대도 20대 17.4%, 30대 26.5%, 40대 25.6%, 50대 이상이 30.7%로 다양했습니다. 직업은 회사원이 31.5%, 자영업자가 15.5%, 주부 18.3%, 학생 7.6% 등이었습니다.

사형·무기징역 사건 배심원은 9명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하는 배심원의 수는 사건의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법정형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의 경우 9명의 배심원이 참여하게 됩니다. 다른 국민참여재판에는 보통 7명의 배심원이 참여하죠. 다만, 피고나 변호인이 공판준비절차에서 공소사실의 주요 내용을 인정한다면 5명만 참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최종 수는 법원이 판단하게 됩니다. 재판 때는 예비배심원 1~2명도 추가로 참석합니다. 서로 누가 배심원이고 예비배심원인지 모르는 상태로 재판을 지켜보게 됩니다. 비로소 검사·변호인 측 최종 변론이 끝나고 평결에 들어갈 배심원을 지목하면 ‘내가 예비배심원 혹은 배심원이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배심원은 평의 절차에 들어가고 예비배심원은 밖에서 대기하게 되죠. 예비배심원이라고 일찍 귀가해선 안 됩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해 배심원이 자리를 비울 경우 그 자리를 대신 채워야 하거든요.

대법원은 앞으로 국민참여재판 제도를 더욱 활성화할 계획입니다. 피고인이 서면으로 신청하게 돼 있는 기존 시스템을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할지 여부를 결정하되, 피고인이 원하지 않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바꿀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사건을 국민참여재판으로 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재판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의도도 담겨 있습니다. 국민참여재판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국민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뉴스클립은 시사뉴스를 바탕으로 만드는 지식 창고이자 상식 백과사전입니다. 뉴스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면 e-메일로 알려주십시오. 뉴스클립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O X 퀴즈

배심원들은 재판 도중 메모를 할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국민참여재판에 관한 상식들을 O, X로 풀어보겠습니다. 준비되셨나요?

Q 재판 도중 증인에게 궁금한 게 있을 땐 질문을 해도 된다.

A X. 피고인·증인에 대해 신문하고자 하는 사항은 재판장에게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재판장이 대신 질문하도록 돼 있습니다. 평의 절차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의 의견을 미리 말해서도 안 됩니다. 혹시라도 다른 배심원의 의견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죠. 내용을 기억하기 어렵다고 재판장의 허락 없이 메모를 해서도 안 됩니다. 사건 관련 정보를 재판 전에 미리 수집·습득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Q 국민참여재판에 배심원으로 나오라는 통지서를 받았다. 중요한 회사 일이 있어 나가기 힘들 경우 법원에 특별히 연락할 필요는 없다.

A X. 반드시 법원에 ‘못 나간다’고 미리 통보하셔야 합니다. 법률상 ‘출석 통지를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하지 않으면 법원의 결정으로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돼있거든요. ▶만 70세 이상이거나 ▶배심원 직무로 위해를 초래하거나 직업상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될 우려가 있는 사람, ▶중병·상해 또는 장애로 출석하기 곤란한 사람 등은 면제가 가능합니다.

Q 배심원 후보에서 배제되는 직업군이 있다.

A O. 다음과 같은 직업군은 배심원 후보군에서 제외됩니다.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 및 입법부·사법부·행정부·헌법재판소·중앙선거관리위원회·감사원 공무원이나 법원·검찰 공무원, 변호사·법무사·경찰·교정 공무원 등입니다. 그 외에도 군인·군무원·소방공무원이거나 동원·교육훈련의무를 이행 중인 향토예비군도 배제됩니다.

 Q 피고인이나 그 주변인으로부터 협박을 당할 우려가 있더라도 법원에 보호를 요청할 수 없다.

A X. 공정한 심리나 평의에 지장을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될 때는 재판장의 권한으로 배심원·예비배심원을 위해 보호·격리·숙박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서죠. 심각한 위해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 법원 측과 상의하셔야 합니다.

Q ‘그림자배심원’은 정식 배심원과 다르다.

A O. 대법원은 정식 배심원과 같은 숫자의 배심원을 별도로 구성해 똑같이 재판을 참관하고 평의·평결을 하게 하는 ‘그림자배심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림자배심원의 평결 내용은 재판 결과에 반영되진 않습니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배심원의 평결 과정을 보다 많은 국민이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 국민참여재판 활성화를 위해 그림자배심원의 평의·평결 과정을 연구 목적으로 활용합니다.

숫자로 본 국민참여재판 자료: 대법원 (2008~2009년)

배심원 출석률

31.3% : 기일 통지한 배심원후보자 1만7424명 중 5419명 출석

판결 일치율

90.6 % : 총 159건 중 144건의 배심원단 유·무죄 평결이 판결과 일치

무죄율

9.8 % : 일반 형사합의 사건(구속) 무죄율(3.0%)에 비해 높음

항소율

87.4 % : 일반사건 항소율(77.3%)에 비해 높은 항소율 기록

항소심 기각율 27.9% 항소심 파기율

72.1 % : 고등법원 사건 원심파기율(41.5%)보다 낮은 수치

양형변경률

22.1 % : 같은 기간 전국 고등법원 양형변경률(32.9%)보다 낮음

고기각율 0% 파기율

100 % : 일반 재판보다 신중한 재판이 이뤄지고 있다는 평가

배심원 직무 만족도

95.9 % : 대부분의 배심원들이 직무 수행에 대해 ‘만족한다’ 평가

평균 평의 소요시간

1시간47분 : 배심원단 평의에 드는 시간은 최저 30분~최대 3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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