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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워보이지만 음미할수록 깊은 시가 좋은 시 아닌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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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첫 시집을 낸 평론가 방민호씨. “책을 내고 보니 처참한 시가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오종택 기자]

문학평론가 방민호(45·서울대 국문과 교수)씨가 첫 시집을 냈다. 연애시집을 연상시키는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실천문학사)다. 평론가로 활동하던 2001년 월간 문예지 ‘현대시’로 등단한 이후 틈틈이 쓴 시를 모았다. 담백하면서도 알기 쉬운 60여 편이 실려 있다.

 1990년대 방씨는 창비 진영 평론가로 분류됐다. 94년 평론가 등단도 창비로 했다. 포스트모던 이론에 반대하는 입장에서 장정일의 소설을 비판하고, 90년대 리얼리즘 논쟁에 끼어들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 기존의 이념적 문학 지형과 거리를 두는 ‘독자노선’을 택했지만 시집에 실린 시들은 다소 의외다. 낯간지러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흘러간 옛사랑을 노래하는 사랑시가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가령 제목으로 삼은 시 구절은 ‘빙의(憑依)’라는 시의 일부다. 사랑하는 사람이 눈동자를 타고 시의 화자 몸 안으로 들어와 ‘당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당신이 가라는 곳으로 가/당신의 모습으로 앉아 있다’는 내용이다.

 8일 오후 방씨를 만났다. 작품을 논리적으로 장악하려는 욕망의 글쓰기인 평론과 정념의 분출인 시, 두 글쓰기의 차이에 대한 명쾌한 해명을 듣고 싶었다.

 -온통 사랑시인 것 같다. 자전적인 것인가.

 “대상이 없진 않겠지만 더 극화시킨 거다. 시는 완전히 진실만은 아니겠지만 또 사실이 아니어도 문제 아닐까. 2, 3부에 실린 시들은 꼭 사랑시 만도 아니다. 공간적인 탐구랄까, 그런 걸 다룬 시들이 있다. 1부에 사랑시를 집중 배치한 이유는 비평가라는 이미지를 덜기 위해서다. 솔직히 시선을 좀 끌어보려고 했다.”

 -제목도 튀는 편이다. (시집만큼 제목이 중요한 책도 없다. 방씨 시집 뒷장에 추천사를 쓴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가 대표적이다)

 “사실 최씨는 시집에 실린 ‘눈물주’의 한 구절, ‘나는 너의 슬픔을 술에 타서 마셔’를 제목으로 권했다. 해설을 쓴 평론가 홍용희씨가 퇴폐적이라며 반대했다.”

 -굳이 시를 쓰는 이유가 있다면.

 “평론가로서 시 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쓰고 싶은 것을 늦게 쓴다고 생각했다. 등단 초기 평론문에서 금기시되는 ‘나는’을 문장의 주어로 자주 사용해 고생했다. 공적인 글쓰기인 평론 말고 보다 근본적으로 나라는 문제에 매달릴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게 시였다.”

 -비평이 왜 공적인 글쓰기인가.

 “작품을 논하면서 아무래도 사회 공동체, 시대와 문명에 대한 판단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시는 가장 사적인 개별적인 포즈를 취하면서 타인과의 감정의 교류를 통해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는 글쓰기다.”

 -시론(詩論)이 있다면.

 “정립된 시론은 없다. 다만 노래처럼 리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쉬워 보이지만 음미할수록 깊은 시가 좋은 시다. 그러려면 언어의 조탁이 절실하다.”

글=신준봉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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