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시론

‘전쟁 비즈니스’로 한몫 보려는 북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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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조 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의 연평도 도발은 중국을 전략적 타깃으로 삼은 측면이 강하다. 북한은 중국을 상대로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전쟁 비즈니스’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북한과 중국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밀착을 과시했다. 김정일은 4년 만의 방중에서 중국에 대대적인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얻어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이에 김정일은 최신형 전투기 수십 대, 약 300억 달러 상당의 경협 지원, 매년 원유 100만t과 쌀 100만t 긴급지원 등의 ‘청구서’를 내밀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중국은 원조나 지원에 대한 명확한 약속도 없이 알맹이 없는 말만 늘어놓았다. 또한 중국 측은 김정일에게 13억 중국 인민도 굶지 않는데 2000만 주민을 못 먹여 살리느냐며 힐난했다고 한다. 여기에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개혁·개방에 대해 ‘한 수 가르쳐 주겠다’고 제의하면서도 김정일을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8월의 정상회담에서조차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후계자 구축을 앞두고 갈 길이 바쁜 김정일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은 저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중국이 대폭 지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북한은 냉전시기,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 조성으로 한몫 크게 챙긴 적이 있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집권 후 조·소 관계가 회복되자 발전소·금속가공공장·알루미늄공장·암모늄공장 건설 지원을 요구했다. 심지어 원유저장시설도 없는 형편에 석유정제공장까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중·소 분쟁 상황에서 모스크바는 가당찮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대북 원조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뤘다.

1968년 1월 23일,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 함정에 의해 나포되는 사건이 터졌다. 미국은 즉각 항공모함 3척을 출동시켰고, 오키나와 공군기들도 남한으로 전진 배치했다. 미국은 북한의 도발적 행동 뒤에 소련의 방조가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정작 북한의 모험적인 도발에 격노한 측은 극동 지역에서 미국과의 긴장과 대립을 바라지 않았던 브레즈네프였다. 그는 즉각 존슨 대통령에게 소련이 이번 사태와 전혀 무관하며 평화적 해결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김일성은 푸에블로호 나포로 65년에 체결한 조·소 군사협정을 시험대에 올렸다. 브레즈네프는 김일성을 모스크바로 불렀으나 그는 응하지 않았고 대신 부수상 겸 민족보위상인 김창봉을 보냈다. 브레즈네프는 긴장 완화와 대미 협상을 촉구하는 한편 핵무기를 제외한 최신 무기체계의 무상 원조와 함께 경제 지원에 대한 북한의 요구를 전폭 수용했다. 그해 소련의 원조로 북창화력발전소를 착공했다. 소련은 사회주의 캠프의 리더로서 국제주의적 책무를 다한다는 명분을 과시하고 김일성을 달래기 위해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지금 중국의 입장은 어떨까?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은 반드시 미국의 개입을 불러오고 일본의 군비 확장을 부추긴다. 더욱이 서방 언론이 북한의 도발을 항상 중국의 대북 포용과 지나친 관용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도 부담스럽다. 중국은 이러한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는 상황을 결코 바라지 않으며, 동북아의 위기 상황 발생 자체를 적극 회피하고자 한다. 북한의 대중전략 포커스는 바로 여기에 맞춰져 있다. 북한은 연평도 포격을 통해 미국을 끌어들이는 동북아의 긴장과 위기 조성이 바로 자기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중국 측에 주지시켰다. 북한의 메시지를 충분히 간파했다면, 후 주석은 북·중 간 당 고위층 인사의 상호 방문을 통해 “6자 긴급협의 개최”를 제의하면서 김정일의 ‘청구서’를 진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8년 당시 27세의 김정일은 김일성이 한반도의 긴장과 극한적 위기 조성으로 미국과 소련이라는 세계대국을 다루면서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한 움큼 얻어 내는 솜씨를 지켜봤다. 이제 김정일은 27세의 세습 후계자에게 한국과 세계대국 중국을 다루는 솜씨를 전수시키는 중이다. 그때 한반도 동해에서 소련을 상대로 ‘전쟁 장사’를 벌였다면, 지금은 서해에서 중국을 상대로 ‘전쟁 비즈니스’를 펼쳐 보이고 있다. 중국의 선택이 주목된다.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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