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대출확인서 제출 … 채권단은 시정 요구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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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현대그룹이 3일 현대건설 주주협의회(채권단)에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금과 관련한 ‘대출확인서’를 제출했다. 이는 채권단이 당초 요구한 ‘대출계약서’와는 다른 서류다. 이에 따라 주주협의회는 법률 검토를 하고 전체 회의를 열어 현대그룹이 제출한 대출확인서를 수용할지를 결정키로 했다.

이날 외환은행 본점에서 열린 주주협의회 실무자회의에선 현대그룹의 대출확인서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고, 다음주 주주협의회 전체회의를 열어 향후 방향을 논의키로 했다. 금융계에선 주주협의회가 현대그룹의 대출확인서를 인정하지 않고 시정요구를 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 등 주주협의회는 지난달 30일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예금 1조2000억원에 대한 대출계약서와 부속서류를 7일까지 내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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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그룹·현대차 서로 공격=이날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 대신 제출한 프랑스 나티시스은행 발행 대출확인서에는 ▶계좌에 들어 있는 자금은 대출금으로 ▶앞으로 인수할 현대건설 주식이 담보로 제공되지 않았고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도 담보로 들어가 있지 않았으며 ▶현대그룹 계열사가 대출 보증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현대그룹은 주주협의회가 요구한 대출계약서에 대해선 “대출계약서는 외환은행과 맺은 양해각서(MOU)에서 규정한 합리적인 자료 요청의 범위에서 벗어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제3의 기관이 현대건설 주식이나 현대그룹 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잡고 이곳에서 나티시스은행에 담보를 제공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무담보·무보증이라면 초단기 자금으로 실제 인수자금으론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현대그룹이 대출계약서가 아닌 확인서만을 제출한 것은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며 “주주협의회는 현대그룹의 우선협상대상자 자격을 취소하고 MOU를 해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의혹을 제기하자 현대그룹도 “현대차그룹이 대출확인서의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입찰 참여자로 지켜야 할 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반박하는 등 난타전이 이어졌다.

 ◆주주협의회, 시정요구할 듯=현대건설 매각 주관은행인 외환은행은 “현대그룹이 낸 대출확인서에 대한 법률 검토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외환은행과 현대그룹이 체결한 MOU엔 소명 자료가 불충분할 경우 다시 5영업일의 시한을 주고 시정요구를 할 수 있다.

 특히 주주협의회 내에서 외환은행(25%) 다음으로 둘째로 많은 의결권을 가진 정책금융공사(22.5%)는 현대 측의 대출확인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그룹이 제출한 대출확인서로는 그동안의 의혹을 해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산 규모가 33억원에 불과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1조2000억원을 대출받아 예금으로 보유하게 된 경위와 이 돈을 외국환관리법령의 저촉을 받지 않고 국내로 들여올 수 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그룹이 주주협의회가 시정을 요구한다고 해도 대출계약서를 제출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만일 주주협의회가 대출계약서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MOU 해지를 강행한다면 현대그룹은 소송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채권단 내부에서도 소송이 이어지는 상태에서 현대건설 매각을 강행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김원배·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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