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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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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977년, 태양계 밖의 먼 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떠난 미국 우주선 보이저 1호와 2호에는 황금 도금이 된 레코드 판과 재생 장비가 실렸다.

이 레코드에는 당시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과 쿠르트 발트하임 유엔 사무총장의 메시지, 그리고 고대 수메르어와 한국어를 포함해 세계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에서 호주 원주민의 민요까지 총 27곡의 음악이 녹음됐다. 한마디로 ‘지구의 소리’가 실린 음반이었다.

 이 음반이 실린 이유는 단 한 가지, 외계인과의 접촉 가능성 때문이었다. 물론 33년 전 발사된 보이저 우주선은 2010년 12월 3일 현재 지구에서 0.0018광년(약 174억㎞) 떨어진 곳까지 날아갔고, 앞으로도 수만 년은 더 날아야 외계 문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선 별 의미 없는 행위 같기도 하지만, 당시 이 계획을 주도했던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은 “병 속에 편지를 넣어 대양에 띄우듯” 해볼 만하다고 주장했고, 그 뜻은 관철됐다.

 저서 『코스모스』로 잘 알려진 세이건은 또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계획을 주도하며 외계인들이 보내올지도 모르는 전자 신호를 포착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사용했다. 별 성과는 없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줬다. 미국 의회가 1996년 ‘쓸데없는 낭비’라며 지원을 끊은 뒤에도 세계 125개국의 과학자들이 민간 기구를 통해 분석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 모든 외계인이 고도로 발달한 존재는 아닐 수도 있다. 3일 미 항공우주국(NASA) 연구진은 지금까지 알려진 생명체의 필수 원소인 인(P) 대신 독극물인 비소(As)를 기반으로 생명을 영위할 수 있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공개했다. 이는 지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H G 웰스의 『우주전쟁』 이후 수많은 SF 소설과 영화들은 지구인보다 훨씬 발달한 ‘악당 외계인’들이 인류를 노리는 상황을 가정했지만, 최근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는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함을 보여줬다. 과연 미개하거나 아예 미생물 수준의 ‘외계인’들과 마주친다면 인류는 얼마나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송원섭 JES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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