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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 피격과 차기 대선 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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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윤호
경제데스크

전쟁도 결국 돈이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돈이야말로 전쟁의 근육”이라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좋은 예다. 연합국과 추축국의 경제력은 전쟁의 승패를 예고했다. 1938년 1인당 국민소득을 1990년의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독일은 5216달러, 이탈리아는 3244달러, 일본은 2356달러였다. 이들의 평균은 3575달러. 연합국의 경우 미국이 6134달러, 영국은 5938달러, 프랑스 4424달러, 소련 2150달러였다. 평균 4673달러로 추축국보다 30%나 많았다. 북한이 우리에게 전면전을 걸어오진 못할 것이라는 해석도 그런 연장선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전면전이 아니더라도 북한이 추가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북한의 군사도발은 일종의 정치행위다. 고도로 계산된 정치 프로젝트라는 말이다. 연평도 포격을 북한 내의 정치역학으로만 따진다면 김정일-김정은 부자의 친위 쿠데타와 같은 효과가 있다. 군사적 긴장을 통해 왕조적 장악력을 한층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행위를 군사작전으로 100% 봉쇄하긴 어렵다.

 안 좋은 변수는 또 있다. 전쟁이 우리에겐 절박하지만 다른 나라엔 꼭 그렇지도 않다. 미국에선 전쟁이 자기 영토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보는 경제학자가 제법 많다. 이른바 ‘군사 케인스주의’다. 미국의 경제학자 윌리엄 노드하우스나 폴 포스트는 이를 ‘전쟁과 경기의 철칙’이라고 부른다.

 실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1941~45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연평균 11%에 달했다. 6·25 때도 그랬다. 한반도가 잿더미가 되고 있는 동안 미국의 실질 GDP는 연평균 6.2%의 성장을 이어갔다. 일본도 그 수혜를 톡톡히 입지 않았나. 이미 해외 금융가에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경우의 경제효과를 가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전쟁 중의 군수품 특수, 종전 뒤의 복구사업 특수를 놓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다시 남 좋은 일을 할 수는 없다. 전면 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금은 결연한 태도로 북한의 도발을 응징하는 게 바로 그 길이다. 한·미 연합훈련도 그런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1~2년, 또는 10년, 20년 뒤엔 어찌할 건가. 이에 대해선 고민이 더 필요하다. 북한을 지도상에서 깡그리 지워버리는 섬멸전을 하지 않는 이상 북한이라는 불량국가의 존재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걸 안정적으로 관리하자며 연성적으로 접근한 게 좌파정권의 포용정책이었다. 북한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살림이 나아지면 긴장도 풀릴 거다, 하는 순수한 기대감에서 출발했다.

 이론상 틀린 건 아니다. 경제학자들은 19~20세기의 교역량과 연평균 개전(開戰) 횟수를 따진 결과 확연한 반비례 관계를 확인했다. 경제성장을 이룬 다음엔 전쟁으로 잃을 게 많아지는 법이다. 또 공동의 무역 네트워크에 들어와 있는 나라끼리는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고안해낸 ‘황금 아치의 법칙’이란 것도 비슷한 내용이다. 황금 아치란 맥도날드 햄버거집에 큼지막하게 걸려 있는 금색의 M자 로고를 말한다. 맥도날드가 들어갈 정도로 국제화(미국화)된 나라들끼리는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게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포용정책이 파산한 이유는 뭘까. 포용정책의 햇볕이 북한이라는 국가 전체가 아닌 김정일 정권에 주로 쪼여졌기 때문이다. 막연히 대북 지원이라곤 했지만, 실제론 ‘대(對)김정일 지원 효과’가 더 컸던 셈이다. 국가의 개념은 영토와 국민을 포괄하는 넓은 뜻에서부터, 집권자와 그의 추종세력을 지칭하는 좁은 개념까지 다양하게 쓰인다. 그런데 지난 정권 10년의 대북 지원은 겉으론 광의의 국가 개념을 쓰면서도 실제 효과는 협의의 국가에 집중됐던 것이다.

 현 정권엔 실패한 포용정책을 다시 들여다볼 이유도 겨를도 없는 듯하다. 당분간 대북 강경노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하지만 도발에 응분의 군사적 타격을 가하는 것과 장기적으로 전쟁 위험을 낮추려는 것은 모순된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大選) 주자들은 지금부터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길 바란다. 과거 정권이 실패한 것, 이번 정권이 하지 못한 것, 그리고 군사작전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이다.

남윤호 경제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