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MOU 체결 또 위임한 건 위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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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현대자동차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문제를 놓고 연일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에 대한 공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1일엔 외환은행이 주요 공격 대상이었다. 외환은행이 자문 변호사를 통해 현대그룹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을 문제 삼았다.

 이날 현대차그룹은 자료를 내고 “외환은행이 주관기관으로서의 의무를 위반했다”며 “(채권단에게 MOU 체결을 위임받은) 외환은행이 채권단 동의도 없이 MOU 체결을 자문 변호사에게 재위임한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다. “민법 682조는 위임인이 재위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법 조문까지 거론했다.

 이어 “외환은행 담당자가 한국정책금융공사 실무자와 다른 곳에서 격론을 벌이던 중 변호사가 MOU에 서명했다거나, 외환은행 담당자가 감독당국의 전화를 의도적으로 회피한 채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등의 믿기 어려운 얘기들이 속속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29일 외환은행이 현대그룹과 현대건설 매각 관련 MOU를 맺자 이번 인수전이 시작된 뒤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거세게 반발했다. 다음 날에는 현대상선 등 현대그룹 계열사를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1일에도 감정 섞인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외환은행이 기자 간담회를 자처해 실사 절차에 들어간다며 어물쩍 넘기려 해도, 그냥 묵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주관은행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적절히 처신하지 못하는 외환은행에 대해 정·관계 및 재계가 한목소리로 비난하고 있다”는 주장도 했다.

 외환은행이 현대그룹에 이달 7일까지 대출 관련 자료를 제출할 시간을 준 것도 비판했다. “이미 어떤 서류도 제출하지 않겠다고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현대그룹에 왜 또 5일이라는 유예기간을 주느냐”고 주장했다. “특히 2차 시한으로 5일을 더 준다는 것은 한마디로 전횡”이라고도 했다. 현대건설 인수 의지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 “외환은행이 현대그룹과 체결한 양해각서가 해지될 경우 진행돼야 할 후속 절차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더 이상의 혼란·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예비협상대상자인 현대차그룹과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차, 외환은행서 대규모 인출=현대차그룹은 외환은행에 공세를 펴는 것과 함께 상당한 액수의 예금을 이 은행에서 인출했다. 외환은행은 1일 현대차그룹이 서울 양재동 사옥 1층의 이 은행 양재동 지점을 철수하라고 요구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 같은 요구는 없었다”면서도 “현재까지 현대차그룹 계열의 예금 인출은 있었다”고 밝혔다.

 외환은행은 인출액은 밝히지 않았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도 “통상적인 목적의 인출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인출액이 1조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금융권 관계자들이 외환은행에 대한 현대차그룹의 압박이 시작된 것 아니냐고 추측하는 근거다. 외환은행은 현대차그룹의 주채권은행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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