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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다른 그들, 625년 된 와인회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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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

기업을 세운 사람의 꿈은 천년 동안 영속하는 장수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통계에 따르면 기업의 평균수명은 30년 정도다. 국내에서도 최근 40년간 상위 100위권을 꾸준히 지켜온 기업은 12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와인업계에는 1385년부터 26대에 걸쳐 625년간 기업을 유지해온 회사가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안티노리 후작 가문이 운영하는 와인회사다.

 이 회사 말고도 와인업계에는 수백 년을 이어온 회사들이 제법 있다. 이들 회사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와인이란 한 가지 업종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둘째, 회사의 계승자들이 가업을 물려받아 한눈 팔지 않고 가업을 더 발전시키려고 노력해왔다는 사실이다.

 셋째 비결은 신뢰에 있다. 이들 장수 기업은 기존 거래업체에 대한 상생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와인업계는 가족이 대를 이어가며 운영하는 업체와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와이너리의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다국적기업이 운영하는 와이너리는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해 거래선을 수시로 바꾼다. 반면 가족형 와이너리들은 장기적 거래관계를 중시한다. 엄청난 매출 부진이 없는 이상은 기존 거래선을 최대한 존중하고, 상생 발전의 길을 찾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넷째, 현장 중심주의다. 노동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좋은 와인은 근본적으로 좋은 포도에서 나온다’는 정신 아래 오너가 직접 노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와인을 빚어내는 토대가 되는 농업적·가공업적·유통업적 특성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성공하는 와이너리의 후계자들은 궂은 농사일을 마다하지 않을 뿐 아니라 포도 재배에서 양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 이상의 지식과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다섯째, 전통 속에서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을 이뤄왔다는 것이다. 안티노리 후작 가문을 이끌고 있는 피에르 안티노리 후작은 소위 수퍼 투스칸의 효시이자 자신의 외삼촌이 생산하던 와인인 사시카이야(Sassicaia)를 발굴해 해외시장 판매를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무리일 것”이라며 만류하던 일이다. 또 프랑스 보르도 포도품종만으로 만들던 사시카이야에 이탈리아 토착 포도품종을 블렌딩한 티냐넬로를 만들었다. 이 같은 끝없는 도전을 무기로 2000년에는 이탈리아 와인 최초로 와인 전문지인 ‘와인 스펙테이터’가 선정한 ‘올해의 100대 와인 중 1위’를 차지한 솔라리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여섯째, 이들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품질 향상에 꾸준히 도전한다. 일반적으로 포도나무는 심은 지 3년이면 첫 수확이 가능하다. 3년차부터는 와인을 빚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와인이 제대로 색깔과 풍미를 내려면 최소한 10년 이상의 수령이 된 나무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해야 한다. 명품의 반열에 올라가려면 최소한 나무의 수령이 30년은 되어야 한다. 그 긴 인고의 세월을 참고 기다리면서 품질 향상을 지속해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일곱째, 마케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도 철저히 품질을 바탕으로 한 마케팅에 주력한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명절이면 줄을 서가며 구입하려 했던 고가의 민속주들이 있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을 넘기지 못하고 그 열기가 시들해졌다. 제조자들이 넘치는 수요만 믿고 품질관리를 등한시한 탓이다. 지속적인 마케팅 노력도 없었다. 심지어는 원료가 부족한 경우 해외에서 원료를 조달해 맛과 향이 희석되는 바람에 소비자가 외면하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나라엔 지구상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한 역동적인 기업이 많다. ‘지속가능 경영’이 화두가 되는 지금, 이들 기업에 수백 년간 변화와 도전을 추구해온 와인업체의 노하우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