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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독한 식중독균, 심장·신장까지 노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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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영국의학저널(BMJ) 최근호에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캐나다 런던헬스사이언스센터 윌리엄 클락 박사팀이 제출한 논문의 결론은 병원성 대장균 O-157과 캠필로박터균 등 식중독균이 고혈압·신부전·심혈관 질환 등 성인병 발생 위험까지 높인다는 것이다.

 2000년 5월 캐나다 워커톤에선 수돗물이 병원성 대장균 O-157·캠필로박터균에 오염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연히 설사·복통 등 식중독(급성 위장염) 증세를 보인 주민이 나왔다. 클락 박사팀은 워커톤 거주 18세 이상 주민 약 2000명을 식중독 경험 그룹과 비(非)경험 그룹으로 나눈 뒤 이들을 추적 관찰했다. 8년 뒤 식중독 비경험 그룹에 비해 경험 그룹의 고혈압 위험은 1.3배, 심혈관질환 위험은 2.1배, 신부전 위험은 3.4배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병원성 대장균 O-157이 생성한 독소(베로톡신)가 혈관에 염증을 일으켜 고혈압·심혈관 질환·신부전 등을 유발한 것으로 해석했다.

 식중독이라고 하면 배탈·설사로 며칠 고생하면 자연 치유되는 가벼운 질병으로 여기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겨울철의 대표 식중독 병원체인 노로 바이러스를 비롯한 살모넬라균·황색 포도상구균·장염 비브리오균·바실러스 세레우스균 등은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고 지속기간도 대개 1주일 이내다.

 그러나 식중독균 중엔 증상이 위·장에 머물지 않고 심장·신장 등 다른 장기들을 손상시키거나 생명까지 위협하는 것이 여럿 있다. 병원성 대장균 O-157·비브리오 패혈증균·리스테리아균이 여기 속한다.

 일반적인 대장균은 대장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세균으로 대부분 병을 일으키지 않는다. 덜 익은 쇠고기 등을 먹었을 때 감염되기 쉬운 병원성 대장균 O-157은 예외다. 이 세균이 내는 독소는 용혈성 요독증후군(HUS)을 유발해 신장을 망가뜨리기도 한다(고려대 식품생명공학과 이민석 교수).

 앞에서 예로 든 캐나다 연구에서도 HUS가 생긴 뒤 신장 사구체에 부담이 가중되는 것이 고혈압·신부전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해석됐다.

 ‘순한’ 장염 비브리오균과는 달리 비브리오 패혈증균은 ‘독종’이다. 평소 간이 나쁘거나 알코올 섭취가 과다한 사람이 비브리오 패혈증균에 감염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24명이 감염돼 11명이 숨졌다(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강동현 교수)

 리스테리아균에 의한 증상은 일반적인 식중독 증세와는 다르다. 임신부가 감염되면 유산·사산·조산 등이 유발된다.

 우리 식품안전·방역 당국이 ‘식중독균은 식중독만을 일으킨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결과 병원성 대장균 O-157·리스테리아 등 ‘유별난’ 식중독균들에 의한 HUS·유산·패혈증 등에 바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리스테리아균의 경우 국내에서 냉동식품 등에서 여러 차례 검출됐지만 리스테리아 환자는 1명도 없다. 미국에선 해마다 2500건 정도 발병 사례가 보고 되고 있다.

 병원성 대장균 O-157에 의해 HUS·신부전이 생긴 사례도 국내엔 일절 없다. 우리 국민이 특별히 더 건강해서일까? 그보다는 HUS 증상이 나타나거나 신장이 망가져도 병원성 대장균 O-157을 의심하는 의사가 거의 없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

 국내에선 애써 식중독과 경구 전염병을 구분한다.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으면 식중독, 전파하면 경구 전염병이다. 관리도 식중독은 식품의약품안전청, 경구 전염병은 질병관리본부가 맡는다. 선진국에선 둘을 합해 식품유래질병(food-borne-disease)으로 분류한다. 기자는 식중독과 경구 전염병으로 나누지 말고 대처도 한 곳에서 해야 더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아울러 “식중독균이 성인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박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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