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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세탁 원조 알카포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4호 30면

“요즘 단속이 심하다고 하던데….” 외국 바이어 접대를 마치고 힘든 하루를 보낸 당신, 단란주점에서 거나하게 취해 카운터 앞에 선 당신의 손에는 신용카드와 수표, 현금이 있다. 업주는 현금으로 계산하면 더 할인해 주겠다는 상황에서 어떻게 계산하고 싶은가?

업주는 탈세나 성매매 등의 불법행위로 얻은 수익이라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현금으로 계산할 것을 권유한다. 설사 카드로 결제를 하더라도 다른 사업자 명의로 카드 전표를 발행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순간 당신은 자금세탁의 현장에 있는 사람이다.

불법·범죄 재산을 합법 재산으로 위장·변환하는 것을 자금세탁이라 한다. 이는 1920년대 미국의 알 카포네 조직이 세탁소에 현금거래가 많다는 점을 이용해 도박장과 밀주 판매 등을 통해 불법재산을 조성한 후 자금을 그들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이탈리아인 세탁소의 합법적인 수입으로 가장한 것에서 자금세탁이라는 말이 유래됐다.

자금세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범죄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고 있다. 차명(借名)·도명(盜名)의 방법, 수표를 반복적으로 현금과 교환하는 ‘자기앞수표 돌리기’, 은행 대출 위장, 어음보관계좌 조작 수법, 수표 바꿔치기 등 전형적인 자금세탁 행위뿐 아니라 보험사기, 환치기, 보이스 피싱 및 전자사이버칩이나 사이버머니, 고액의 게임 아이템을 이용한 자금세탁 등 최근에는 다양한 유형의 세탁 방법이 성행하고 있다.

특히 축구·경마와 같은 스포츠를 통한 자금세탁은 지금 국제사회에서 뜨거운 화두다. 범죄자들은 이제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틀에 박힌 자금세탁에서 탈피해 검은돈을 세탁하는 신기술을 찾아 헤매는 발빠른 행보를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축구처럼 대중적인 인기몰이를 하는 세계인의 스포츠 종목들이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은 이런 과제들을 놓고 자금세탁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제4회 자금세탁방지의 날 기념행사(26일)를 열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자금세탁 방지 국제기구(FATF) 등 국제금융기구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안정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관리·감독체계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그런 가운데 금융정보분석원에서도 한국의 자금세탁방지 체제 개선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테러자금 규제 대상이 되는 재산의 범위를 확대하는 ‘공중협박자금조달금지법’ 개정안을 지난 10월 말 국회에 제출했고, 자금세탁 방지 제도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선진국 수준의 제재수단 마련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특정 금융거래보고법’ 개정안을 올 연말까지 제출할 계획이다. 또한 최근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비자금과 차명거래에 대한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급증하는 보고 사건들 가운데 혐의 정도에 따라 필터링(Filtering)된 정보만 상세 분석하는 최고의 지능형 분석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적발 실적 또한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세계화 물결 속에 서식하는 초국가적 자금세탁범죄의 본질은 범인이나 조직이 아니라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는 ‘자금’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금세탁범죄를 뿌리뽑고, 근원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자금을 색출하고 박탈하는 것이다. 현재 금융정보분석원이 세계은행과 함께 추진 중인 아시아 국가 및 자금세탁방지 후발국가(Low Capacity Countries)에 대한 인력·기술 지원은 투명한 국제 금융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 이들 나라에서도 자금세탁 방지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한국처럼 자금세탁 방지의 날을 제정하는 것은 어떨까?



최수현 서울대 졸업(55세). 행시(25회) 합격 뒤 재무부·청와대비서실·세계은행에서 일했으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근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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