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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트럴 데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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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시속 100㎞로 질주하는 기관차를 몰던 중 갑자기 브레이크가 고장났다고 생각해 보자. 철로엔 인부 5명이, 오른쪽 비상철로엔 1명이 있다. 선택은 핸들을 꺾든지, 그대로 가든지 둘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5명을 죽이는 것보다 1명을 죽이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1명의 목숨은 5명의 목숨보다 상대적으로 덜 귀한 걸까.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을 죽이는 결정을 도덕적이라 할 수 있을까.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베스트셀러 『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전차 문제(trolley problem)’다.

 전차 문제는 ‘대(大)를 위해서라면 소(小)를 희생해도 좋다’는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사람들에겐 그럴 듯한 대의명분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정적 현상은 어느 정도 감수할 만하다 여기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이 주장은 숫자가 커지면 더 그럴듯해진다. 미국의 군사용어인 ‘콜래트럴 데미지(collateral damage)’가 좋은 예다. 대규모 군사공격에 따르는 민간인 피해를 뜻하는 말이다. 의도하지 않은 희생, 부수적 피해 등으로 번역된다.

 이 용어는 미국 정부가 1970년대 베트남전에서 벌어진 민간인 살상행위를 설명하면서 널리 쓰이게 됐다. 일종의 완곡어법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에서 이 용어를 툭하면 사용해 욕을 먹었다. 노엄 촘스키나 진 하워드 같은 진보지식인들은 “비인도적 살상행위를 호도하는 말장난”이라며 비난했다. 한국도 이런 말장난에 당했던 불쾌한 기억이 있다. 최근 ‘작은 연못’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진 노근리 사건이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우리 양민 300여 명을 몰살시킨 사건이다. “피란민 안에 북한군이 숨어 있을지 몰라 총격을 가해 일어난 우발적 비극”이라는 그들의 변명은 참 구차했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로 숨진 민간인들에 대해 ‘오인 포격’으로 인한 실수인 것 같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군시설인 줄 알고 정밀 타격했는데 애꿎은 민간인이 죽은, 북한이 의도하지 않은 피해라는 뉘앙스다. 본질을 흐리는 논점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애당초 민간인을 노릴 의도가 없었다면 죗값이 좀 가벼워지기라도 하는 듯한 착각마저 느껴지게 하기 때문이다. 콜래트럴 데미지는 선택행위에서의 도덕적 난감함을 어떻게든 비껴가기 위해 가해자가 만든 면죄부에 가깝다. 하물며 가해자는 가만히 있는데 피해자가 나서서 말할 건 아니란 얘기다.

기선민 문화스포츠 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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