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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오마에 겐이치 한국비판 평론 2탄 전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초 한국경제를 호되게 비판하는 글로 큰 반향을 일으킨 일본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가 다시 포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역시 잡지 '사피오' (9월22일자)
에 글을 실었으며 지난번보다는 대안 위주로 쓰려고 애썼다. 제목은 '그럼,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특효약의 처방전을 가르쳐주마'.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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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한국경제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한 특효약의 처방전을 가르쳐주마

7월28일의 논문이 한국에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점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내외의 평가는 극히 높았으며 그 경제개혁의(?)
오류에 대해서는 누구도 지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서도 중앙일보, 조선일보, 매일경제, 신문, 한국경제신문등 많은 매스컴들의 인터뷰신청이 있었으며 한국경제를 주제로 한 책의 출판 을 제의받기도 했다.

한국에서의 반향을 보면 70%는 긍정적이었고 30%는 반발하는 것이었다. 반발의 이유는 크게 3가지다. 하나는 '오마에 겐이치는 한국을 싫어해서 그런 것 아니냐' 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 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는 '일본인 주제에 무얼 말할 수 있겠느냐' 는 것으로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의견을 말할 때 늘 나오는 한국인의 정형화된 거부반응이었다. 그러나 7할 정도의 사람들이 전향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 이 과거에 비해 한걸음 부드러워진 반응이 아니었나 본다.

그 이유는 우선 내가 발언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 대해서든 일본인의 입장에서 발언한 적이 없다. 늘 '보더리스 경제' 를 제창한 경영컨 설턴트로서 글로벌한 시점에서 발언해왔다.게다가 논문이 게재된 타이밍이 절묘했다. 7월28일자호가 발매되던 다음주에는 자산규모 2위의 재벌 대우그룹의 해체가 표면화됐다. 이때 내가 지적한 재벌해체에 의한 경제붕괴의 위기가 현실감있게 느껴졌고 한국인들도 내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대우사태는 다른 재벌에도 연쇄적인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지탱해오 던 것이 바로 재벌이다. 그 재벌이 시작했으며 이젠 그 흐름을 막기도 어렵게 됐다. 은행들도 재벌의 영향력하에 있으므로 이를 지탱해주기 어렵다.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
의 처방에 따른 한국의 경제개혁은(?)
급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미국은 더이상 한국을 돕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이 한국을 지원한 것은 미국은행들이 한국에게 빌려준 돈을 IMF의 구제금융을 통해 회수하기 위한 '셀프 인터레스트' 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돈을 되찾을 경우 미국에 있어서의 한국경제위기문제는 해결된다. 원래 미국은 한국에 대해 그렇게 동정심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앞으로의 문제는 한국이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미국에 기대 개혁을 해온 김대중 대통령은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듯하다.

나는 한국의 경제위기는 일본인에게 한국의 주식이나 금융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한다면 단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금리가 높고 매력적인 금융상품도 많다. 지금이라면 주가나 원화가치도 싸다. 초저금리로 투자기회가 없는데다 뭉칫돈이 그대로 고여 있는 일본의 개인들에 대해 금융을 개방한다면 특효약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제안을 하면 아마도 한국인은 "미국을 쫓아내고 일본이 들어올 속셈이다" 라며 삐딱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모처럼 해답을 제시해줘도 쉽게 들어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돈에는 국적이 없다. 일본의 예금자가 한국에 투자하는 것은 이익이 되기 때문이며 이익이 안 되면 돈을 빼오는 것이 당연하다.

돈에 국적의 꼬리표를 부쳐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 편협한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한국으로부터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어렵다. 나의 제언에 대해 낡아빠진 애국심을 가지고 반발하는 30%정도의 한국인들은 스스로 자기 목을 졸라매고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결국 한국 최대의 문제는 자기나라의 문제를 진지하게 논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강해 학자나 지식인은 현정권에 대한 비판으로 들릴만한 말은 정면으로 하지 못한다. 재벌이 한마디 하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돼 일반대중으로부터 기피당한다.

또 일본인이 얘기하면 "그것은 일본을 위해서 그런 것 아닌가" 라고 하고, 미국인이 거들면 "미국을 위해서 그런 것" 이라고 반발하면서 자기나라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드물다. 국민의식이 복합골절돼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은 재벌에 대해 삐뚤어진 심리를 갖고 있다. 내가 "재벌이 없어지면 무엇이 남겠느냐 "고 지적해왔으나 한국인들은 "재벌이 부를 독점한다" 며 가차없이 재벌을 비판한다. 재벌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재벌에 유리한 발언에 대해서는 반드시 "재벌 배불리는 소리다" 고 반발하는 습성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국내에 있을 때의 얘기다. 해외에 나가면 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재벌에 대해 긍지를 느끼고 만다.

예를 들어 외국의 공항의 짐수레에는 늘 재벌 기업의 로고가 들어 있다. 어느 나라에든 대도시의 번화가에는 재벌의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있다. 그런 광경을 보면 한국인은 감격해 자기들이 염색체 수준까지 '한국=재벌'이 되고 말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국내에 있는 동안에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때문에 "만일 재벌이 없어진다면" 이라는 발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중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처럼 재벌을 해체하겠다고 선언한 지도자도 있었으나 실제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재벌을 대체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도 공산당을 해체한뒤 그를 대체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나라를 움직이는 근간을 해체할 경우 그를 대체할 것이 없으면 그 나라는 쇠퇴하고 만다. 그럼,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금융을 개방하지 않으려 하면 방법은 두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누구나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고 젊은이들이 새로운 회사를 키워내도록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엔젤'세제등 제도나 법률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처방은 한국과 일본에 똑같이 적용된다. 다만 한국은 일본보다 신흥기업의 수가 훨씬 적다. 한국이 일본의 혼다, 소니, 교세라에 필적하는 기업을 키우기까지는 10년정도 걸릴 것이다.

그러나 이를 지금 즉시 시작하지 않으면 늦는다. 다른 하나는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까지 겉으로는 잘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성공한 예가 별로 없다. 그 이유는 재벌우대원칙과 강력한 노조때문이다, 특히 외국기업으로서는 한국의 고용관계를 이해해 원활한 기업활동을 벌이는 것이 무척 어렵다. 이 문제는 노동조합의 지도자를 포함해 한번 냉정히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데 이것도 5년정도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사용하는데 시간이 5년, 10년 걸린다고 하면 당분간은 어쩔 수 없이 재벌이 건재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조건에서 활동을 하면서 경제를 지탱하도록 할 수밖에 없다.

재벌은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의 경쟁에 밀려 서서히 쇠퇴해가도록 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래서 5년뒤에는 외국기업, 10년뒤에는 한국내에서 자라난 신흥기업이 한국경제를 지탱해나가도록 하는 것 이외에는 한국경제가 재생할 길은 없다. 원래 한국에서 재벌이 성공해온 것은 한국이 저개발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재벌이 가장 흥했던 시기는 약70년쯤 전인데 당시에는 지금의 한국과 마찬자기로 정부가 인허가권을 기초로 시장장벽을 쳐놓고 재벌을 외부의 경쟁자로부터 지켜줬다. 그때문에 자꾸 횡적으로 확대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선진국 경제는 다르다. 자유경쟁체제 아래에서는 하나의 회사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분야는 많지 않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 '카오(花王)
'가 성공한 분야는 화장실용품 정도다.

치약에서는 '라이온'을 이기지 못한다. '도요타자동차'조차 주택사업에서는 성공하지 못했다. 마요네즈는 '큐피' 소스는 '불독', 불고기 소스는 '에바라' 등으로 정해져 있다. 미국에서도 과거에는 '제네럴 모터즈' , '제네럴 일렉트릭', '제네럴 푸드'등 모두 '제네럴' 이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한 사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요즘은 '시스코 시스템즈' 하면 라우터 (랜의 상호접속을 위한 장치)
, '오라클'은 데이터 베이스, '선 마이크로시스템즈' 는 컴퓨터 서버 등으로 세계적인 기업들이 모두 단품종사업을 벌이고 있다. 반면 한국에는 그런 브랜드가 없다. 지난번 논문에서 "한국에는 한국에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물건이 거의 없다" 고 지적했는데 이는 "브랜드가 없다"는 말과 똑같은 뜻이다. 한국에서는 무엇을 사든 재벌기업의 상표가 붙어 있다.

각 재벌이 조선, 중기계, 자동차, 가전, 반도체, 식품, 금융, 증권등 안하는 것이 없어 국민총생산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소비자가 정말 자유로운 선택권을 지닌 선진국이었다면 그렇게 일반적인 기업이 성공할 수는 없다. 게다가 한 재벌이 어떤 사업을 손대면 다른 재벌도 반드시 뒤따라 같은 분야에 겹치기로 뛰어들기 때문에 재벌 이외의 기업은 자라나지 못했다. 가끔 성공한 독립기업이 나타나 잘 되간다 싶으면 금방 정치의 힘을 빌려 옆으로 벌리고 만다. 그러나 세계적인 경쟁에는 한 우물을 깊이 판 기업이 이기게 돼있다. 한국재벌처럼 옆으로만 넓게 벌어진 기업은 경쟁에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브랜드라는 것은 치열한 자유경쟁을 싸워이겨 살아남은 것을 말한다. 일단 브랜드가 생겨나면 세계화의 길이 보이게 되는 법이지만 그 수준까지 이르지 못한 것이 한국기업의 최대문제다. 이는 한국이 얼마나 저개발국의 특징을 지니고 있느냐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이를 이해하고 있는가, 이것이 내가 한국인들에게 던지는 기본적인 의문이다. 한국인들은 흔히 "일본은 한국의 희생을 딛고 발전했다" 고 말하곤 한다. 맞는 말인지 모르겠으나 나에게 물어본다면 허세를 부리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그런 얘기를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사실은 사실이다. 한국은 일본의 기술을 값싸게 들여와 그를 토대로 세계화를 꾀하지 않았는가. 순조롭게 성장하고 있을 때는 그런 얘기를 안하지 않았는가. 억울하면 한국의 독자적인 물건을 만들어내면 될 것 아닌가. 일본도 과거에는 "모두 서구를 흉내낸다"고 조롱받으면서 성장해왔다. 한국도 하려면 못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세계경제에 대한 적성은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낫다고 본다. 한국은 국가의 시스템이 안 좋아서 그렇지 개인의 능력은 매우 우수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결국 한국인은 자신의 실체를 깨닫고 건전한 위기감을 가지라는 것이다. 일본탓이나 미국탓을 하는등 다른 나라에 책임을 돌리려 하지 말고 세계에서 겨룰 수 있는 한국 독자의 산업분야를 몇개 정도 만들어내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4천만명의 인구를 먹여살리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내가 그런 말을 하면 한국인들은 "유망한 산업분야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나에게 해답을 찾으려 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해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가지 정도 충고한다면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기업을 일으키게 하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젊은이들이 본능적으로 선택한 분야가 결국은 옳은 분야다. 그렇게 해도 살아남는 것은 1천개중에 하나 정도다. 한국 국내에서 치열하게 경쟁해 살아남은 기업이나 상품이 수출경쟁력을 지닌 브랜드가 된다. 미국에서나 일본에서도 산업을 육성하는데는 이 방법밖에 없다.

이코노미스트(http://economist.joongang.co.kr) 제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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