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베리드] 이라크전 와중 생매장된 사내, 관 속 사투 90분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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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한복판에 생매장당한 남자의 사투를 그린 스릴러 ‘베리드’. [크리스리 픽처스 인터내셔널 제공]

영화는 만들고 싶은데 돈은 넉넉지 않고 스타 캐스팅도 자신 없다면? 이제부터 답은 “영화 만드는 걸 포기하라”가 아니라 “‘베리드(Buried)’처럼 만들어라”가 될지 모른다. 미국·스페인·프랑스가 합작한 ‘베리드’는 90여 분간 관 속에 갇힌 남자 한 명만 보여준다. 플래시백(과거 회상 장면)도 전혀 없다. 한 공간에서만 진행되는 영화는 지금까지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그 공간만 100% 보여주는 경우는 없었다. 다른 인물들은 남자와의 통화에서 목소리로만 나올 뿐이다. 주요 소품이래 봤자 라이터와 휴대전화 정도다. 주인공은 암흑을 피하기 위해 라이터를 켤수록 관 속의 산소량은 줄어드는 아이러니와 싸워야 한다. 제작비는 할리우드 영화로선 매우 적은 300만 달러(약 34억원)이지만, 남자의 생존 여부에 초점을 맞춘 팽팽한 긴장감만큼은 대작 못지 않은 수준급이다.

 남자의 이름은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 이라크전에 트럭운전을 하러 갔다가 습격을 받아 하루아침에 사막 한가운데 생매장된다. 관 속에 있던 휴대전화로 아내, 자신을 파견한 회사, 미국 국무부 등에 통화를 시도하지만 연결이 되지 않거나 속 터지는 소리만 듣는다. 한마디로 회사나 정부나 폴의 구출에는 큰 관심이 없다.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도 회사 인사담당자는 사고가 일어나기 전 퇴사 조치됐다는 사실을 통보한다. 남자의 몸부림을 보여주는 가운데 영화는 생존 스릴러에서 멈추지 않고 현대사회의 냉혹함과 부조리함까지 건드리고 지나간다.

 시작 장면에서 6분간 암흑이 이어지는 등 지루할 수 있는 요소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하지만 ‘베리드’는 연극의 막(act) 개념처럼 작품을 정확히 삼등분을 해 지루함을 명민하게 피해간다. 뱀의 출현, 인질전담반 반장과의 대화, 인질비디오 녹화, 회사로부터의 해고 통보, 인질범의 요구에 따른 신체절단 등 자잘한 사건이 폴의 통화와 얽히며 잠시도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다른 생각이 든다면, ‘왜 인질범은 생매장이라는 독특한 방법으로 인질을 잡았을까’라는, 다분히 작위적인 요소에 대한 의문 정도?(이마저도 인질범이 스스로의 안전을 위해 인질을 자신과 격리했다고 설명한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결말마저도 예상을 피해가니,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라는 말은 하기는 쉽다. ‘베리드’처럼 만들기가 어려울 뿐. 촬영에는 7개의 관, 17일이 소요됐다고 한다. 세계 독립영화제의 최대 잔치인 올 선댄스영화제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 12월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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