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잘하는데 금융엔 문제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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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KB금융지주 어윤대 회장(왼쪽)이 24일 부산지역 기업고객인 부산 강서구 오리엔탈정공을 방문해 서종석 대표와 생산라인을 둘러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송봉근 기자]

25일 부산 강서구의 선박 기자재 업체 오리엔탈정공 제 2공장. ‘윙윙’ 하고 기계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안전모를 쓴 KB금융그룹의 어윤대 회장이 생산된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어디에 쓰는 거냐, 어떤 기술이 필요하냐며 이런저런 질문도 던진다. 이 회사 직원의 설명을 듣던 어 회장은 “직접 현장을 와 보니 어렵다는 조선업도 이렇게 잘하고 있는데 정작 이들을 지원해야 할 금융이 문제가 많았다”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 회장은 22일부터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울산 등 경남지역을 돌며 120여 개 중소기업 대표들을 만나고 있다. 현장을 방문해 기업금융의 문제점을 듣고 퇴직연금 등 상품을 소개하기 위해서다. 거래기업 유치를 위한 영업에 지주사 회장이 직접 나선 것이다.

 현장에선 마냥 화기애애한 덕담만 오간 게 아니다. 이날 방문한 오리엔탈정공에선 기업금융에 대한 불만이 나왔다. 이 회사의 서종석 대표는 “기업은 어려울 때 은행을 필요로 하는데, 이럴 때 은행은 오히려 기업을 외면한다”며 “조선업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 금지 방침을 풀어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어 회장은 “조선회사에 RG를 해주다 수천억원이 부도 난 경우가 있었다. 철저한 조사 없이 수수료 장사하다 보니 이 분야의 부실이 1조원에 이를 정도”라고 말했다.

 앞서 방문한 밸브 제조회사 시퍼스 파이프라인에선 지급보증이 화제였다. 이 회사의 조영득 대표는 “수출을 많이 하다 보니 지급보증서가 중요한데 KB의 지급보증서는 외국에서 받아주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어 회장은 평소의 지론인 규모의 경제론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는 “지급보증이 안 통하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회사의 규모가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다”며 “앞으로 KB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어 회장은 기업방문을 통해 기업들이 처한 상황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수출기업들은 장사를 잘해도 환율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 금융회사들은 이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제경제 상황에 따라 수급이 달라져 안정적인 재무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수출기업에 대해 금융이 무관심했다”는 지적도 했다. 기업인들에겐 향후 기업금융을 확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어 회장은 지난 7월 취임 후 ‘현장 경영’을 외치며 1000여 명의 우수고객과 1200여 명의 일선 지점장들을 만났다. 지난달 초부터 3주간은 140여 개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방문했다. 이번 기업방문도 그 연장선이다.

 어 회장만이 아니다. KB금융의 주요 경영진은 모두 현장을 돌고 있다. 임영록 KB금융 사장은 고향인 강원 지역에서, 민병덕 국민은행장은 대구 지역에서 고객과 직원들을 만나고 있다. 어 회장은 “바쁘게 움직이는 CEO의 모습이 직원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연중행사로 하려 한다”고 말했다.

 어 회장이 현장을 다니는 동안 공교롭게도 KB금융의 시가총액이 7개월 만에 1위로 올라섰다. 이날 KB금융 주가는 전날보다 1700원(3.29%) 오른 5만3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시가총액은 20조6312억원을 기록해 20조5566억원에 그친 신한금융을 앞섰다. 어 회장은 이 소식에 “KB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내년 상반기에는 개혁의 성과가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예고했다.

 한편 이날 하나금융지주가 이사회를 통해 외환은행 인수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어 회장은 “좋은 궁합이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경쟁력 있는 은행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수작업이 성공하면 금융권은 3강(우리, KB, 신한금융) 1중(하나금융) 체제에서 ‘4강 체제’로 변한다는 것이다. 어 회장은 이 같은 구도가 “경쟁을 통해 고객 서비스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부산=권희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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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소속기관

생년

[現] KB금융지주 회장
[前] 고려대학교 총장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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