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광저우] 물거품 된 6연패 … 울어버린 ‘우생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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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져 결승 진출이 좌절된 후 침통한 얼굴로 경기장을 나서는 여자핸드볼 선수들. [광저우=연합뉴스]


남자 축구, 남자 배구에 이어 여자 핸드볼도 무너졌다. 세 종목 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예상했지만 금메달 문턱에도 이르지 못했다.

 여자 핸드볼 대표팀이 25일 광저우의 광궁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일본과 준결승전에서 28-29로 졌다. 충격적인 패배다. 여자 핸드볼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0년 베이징 대회 이후 5연패를 달성했을 만큼 아시아에서 적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인 황경영(41) 감독이 이끄는 일본에 지면서 ‘20년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선수도 팀도 없는 핸드볼=아시안게임 직전 여자 핸드볼 선수들에게 연이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벽산건설과 용인시청이 해체 위기에 몰려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벽산건설은 지난달 전국체전을 마지막으로 핸드볼에서 손을 떼 다른 기업이 인수를 추진 중이다. 하지만 용인시청은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서는 기업조차 없다. 현 여자 핸드볼 대표팀 16명 중에는 벽산건설 소속이 3명(문필희·류은희·김온아), 용인시청이 3명(이민희·남현화·명복희)이다. 한 핸드볼 관계자는 “마음이 뒤숭숭한데 최상의 경기력이 나오겠느냐”고 했다. 2009년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대한핸드볼협회장에 취임하면서 핸드볼인 사이에서 “‘한데볼’ 핸드볼에도 봄이 올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실업팀 존속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아줌마 부대’가 빠진 자리=팀이 자꾸 사라지는데, 핸드볼을 하겠다는 유소년이 많을 리 없다. 최근 2~3년간 초·중·고·대학 팀의 해체도 잇따랐다. 우수한 꿈나무들이 다른 종목으로 빠져나가니, 세대교체가 더딜 수밖에 없다. 핸드볼계에는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위기 의식이 팽배하다.

 세대교체가 힘들었던 까닭에 그간 한국 핸드볼은 ‘아줌마 선수’들에게 의존했다. 오성옥(36·히포방크)과 오영란(36·벽산건설), 허순영(33·오르후스)이 2008 베이징 올림픽까지 팀의 주역이었다. 올림픽 후 여자팀은 김온아·이은비·정지해 등 20대 초반 선수들을 팀의 주축 선수로 발탁하며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고 있다.

 ◆외국으로 나가는 지도자들=한국에 일격을 가한 일본의 황 감독은 1998년 일본 여자 핸드볼 대표팀 코치로 부임한 뒤 2005년부터 오므론 팀 감독을 역임했고, 2008년 9월부터 다시 일본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황 감독 부임 이후 한국과 일본의 상대 전적은 2승 2패다. 임오경 서울시청팀 감독은 “한국인 지도자가 해외에 건너가 한국 특유의 강훈법을 전파하면, 솔직히 우리가 이기기 힘들다. 체력이나 지원이 우세한 외국팀을 이기는 유일한 비법이 쉴 새 없는 강훈인데, 훈련량까지 같아지면 뾰족한 수가 없다”고 허탈해했다.

 지금도 핸드볼 지도자들은 계속해서 해외로 나간다. 연봉이 국내의 2~3배에 달하고, 핸드볼 인기까지 높은 외국 팀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힘들다.

광저우=온누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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