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폭약 냄새 코 찌르고 … 1m짜리 불발탄 뒹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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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곳의 시계는 60년 전으로 되감겨 있었다

송영길 인천시장이 자신의 트위터(@Bulloger)에 올린, 포탄에 맞아 불탄 연평도 상점의 모습.

 매캐한 폭약 냄새가 낮게 가라앉았다. 검게 그을린 슬레이트 지붕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창틀이 휘고 유리창은 산산조각 났다. 문짝은 녹아 내렸다. 건물을 지탱하던 시뻘건 철골은 힘없이 꺾였다. 콘크리트 벽은 잘게 부서져 길바닥으로 쏟아졌다. 시멘트로 만든 외벽만 간신히 남았다.

 검게 탄 집들은 살림살이를 맥없이 토해냈다. 섬의 적적함을 달래주던 TV도, 아이가 꿈을 적어 내려가던 책상도 모두 잿더미가 됐다. 연평도 내 주택 22동과 면사무소 등 공공시설 8동 등 모두 30개 주택과 건물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마치 6·25가 한창이던 1950년 겨울 서울 한복판에 서 있는 착각이 들었습니다.”

 2010년 11월 24일 서해 연평도. 그곳의 시계는 60년 전으로 되감겨 있었다. 이날 오후 이곳에서 두 명의 민간인 시신이 나왔다.

 누군가 이를 깨물며 말했다. “어떻게 민간인까지…, 저놈들, 우리가 같은 민족 맞나.”

# 눈에 보이는 곳은 모두 불에 탔다

 섬 앞 당섬 선착장에서 방조제 도로를 달려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입구 광장을 끼고 있는 대성상회는 주저앉아 있었다. 여름휴가철이면 얼린 물과 먹을거리를 찾던 휴가객들이 찾아왔던 곳. 사람들을 떠나 보내고 겨울휴가를 나던 세간이 모두 불탔다. 불에 그을린 음료수 병과 깨진 그릇 수십 개가 길바닥으로 쏟아져 나왔다. 마을 입구에는 해경초소와 파출소가 무력하게 서 있었다.

 골목으로 더 들어갔다. 해성여관 유리창이 박살 나 있었다. 그 앞에는 빨간색 유아용 보행기가 내팽개쳐 있었다. 여관 앞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갔다. 중국음식점과 당구장의 담은 무너져 내렸다. 폭약 냄새도 코를 찔렀다. 전쟁영화 세트장 그대로였다. 김장철이었다. 긴 겨울을 준비하던 마음은 폭격에 무참히 찢겨져 나갔다. 길가에는 소금에 절인 배추가 나뒹굴었다. 손질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100포기쯤 되더라고. 아마 김장을 하다가 급하게 도망을 갔는가 봐.”

 폭격을 맞은 집에선 김치냉장고에 넣어둔 김치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채 흩어졌다. “21년 동안 연평도에 살면서 겨우 집 한 칸 마련했는데 이제 어디 가서 살아야 하느냐”는 울부짖음 앞에 섬은 까만 연기만 토해냈다.

 연평마트는 포탄을 직접 맞아 지붕이 날아갔다. 유리창은 모두 부서지고 앙상한 시멘트 벽만 남았다. 마트 옆 2층 주택은 유리창이 모두 깨졌다. 골목마다 자전거가 부서진 채 넘어져 있었다.

# 옥상에 1m 구멍이 뚫렸다

 작은 섬 구석구석 소식을 전하던 우체국 관사도 포탄을 피하지 못했다. 지붕이 뻥 뚫렸다. 관사의 한쪽 벽 벽돌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좁은 마당에 길이 1m가량의 탄피가 떨어져 있었다. 주변 민가 담벼락에는 파편이 박힌 흔적이 남았다. 전사박물관에 보관해야 할 비극의 현장이었다.

 면사무소 뒤에 있는 보건소 옥상은 포탄을 직접 맞았다. 어른 손 한 뼘 두께의 철근 콘크리트로 된 옥상에 1m가량 구멍이 뚫렸다.

 도로 곳곳에는 구덩이가 깊게 파였다. 연평도 북쪽 외곽 도로에는 1m짜리 불발탄이 박혀 있었다. 마을 공터에도 포탄이 떨어졌다. 주변의 3층짜리 건물의 유리창은 모두 깨졌다. 주차돼 있던 승용차는 10m가량 날아가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트렁크 문은 떨어져 나갔다.

 마을 동쪽 수협 근처에는 기름보관탱크가 있었다. 군부대와 어민들이 쓰는 기름을 저장하는 곳이었다. 포탄은 탱크에 명중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변은 불바다가 됐다.

 야산에서는 아직 연기가 피어 오른다. 포탄에 맞은 집에서도 검은 연기는 새어 나온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800여 가구. 대부분 단층이고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불이 나면 쉽게 옮겨 붙는다. 순식간에 마을은 잿더미로 변했다. 이날 오전 현장을 둘러본 송영길 인천시장이 말했다. “피격된 민간시설은 예전 군사시설이었다. 북한이 장기간 정보 수집 후 조준 사격했다는 증거다.”

인천=임주리·유길용 기자



※ 이 기사는 23일과 24일 해경·해군 배편을 타고 인천으로 대피한 이진숙(40·여·연평면사무소 직원)씨, 김성식(49·무진호 선주)씨, 조순례(47·여)씨, 박훈식(55·어촌계 여관 운영)씨의 목격담과 해양경찰청에서 보내온 사진을 토대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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