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에 묻힐 나이 아니지요 … 추억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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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에서 만난 가수 이문세. “30여 년 동안 라디오 방송을 통해 쌓아온 친근감이 나의 강점”이라고 했다. [김도훈 인턴기자]

이문세란 이름은 뭇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낸다. 그 이름을 떠올릴 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진다. 아마도 그건, ‘이문세표 발라드’를 들으며 끝내 돌아섰던 ‘옛사랑 그 이름’을 읊조렸기 때문이고, 찬바람 부는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를 다시 걸었기 때문이고,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한다’며 눈물 번진 편지를 써 내려갔기 때문일 테다.

아닌 게 아니라, 1980년대 이래 그의 발라드는 애잔한 멜로디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새천년 들어 조금 뜸해졌다. 2002년 14집 앨범 발표 이후 정규 앨범이 뚝 끊겼다. 몇 해 걸러 한번씩 싱글 앨범을 내긴 했지만, 발라드보다 ‘알 수 없는 인생’처럼 다소 빠른 템포의 곡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4년 만에 정통 발라드 곡을 발표했다. MBC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에 삽입된 ‘사랑은 늘 도망가’이다. ‘눈물이 난다 이 길을 걸으면/그 사람 손길이 자꾸 생각이 난다….’란 노랫말로 시작되는 가슴 시린 사랑 노래다. 그의 열성팬이라면, 이문세 특유의 호소력 짙은 발라드를 목을 빼고 기다렸을 터. 왜 이토록 더디 찾아온 걸까.

 “지난 몇 년 동안 온통 공연 생각뿐이었어요. 새 음악을 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지만 공연 일정을 소화하기도 벅찼을 정도였거든요. 그러다 보니 10곡 넘게 들어가는 정규 앨범은 엄두도 못 냈죠.”

 실제 최근 몇 해 동안 그는 스케줄의 절반 이상을 공연을 위해 할애해왔다. 아침 라디오 방송을 제외하곤 “공연을 구상하거나 실제 공연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는 23개 도시에서 ‘이문세 붉은 노을 전국투어’를 펼치기도 했다. 모두 마흔일곱 번 공연을 치르는 동안 9만5000여 명의 관객이 몰렸다.

 “제겐 공연이 가장 매력적인 일이에요. 새 음악은 없어도 기존 음악들을 새롭게 꾸며서 무대에 올리는 일이 가슴 벅차죠. 관객들과 함께 공연을 즐기다 보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그는 그간 1000석 남짓한 중·소형 무대를 주로 꾸며왔다. “공간의 크기와 감동의 깊이는 반비례 한다”는 게 평소 소신이다. 그러다 지난해 ‘붉은 노을 전국투어’ 때부터 조금씩 판을 키워봤다. 그는 “관객들과 나누는 온기는 좀 덜했지만 작은 무대를 통해 차근차근 노하우를 다져왔기 때문에 큰 무대에도 슬슬 자신감이 붙었다”고 했다.

 해서 올 연말엔 판을 좀 더 키우기로 했다. 다음 달 10일~12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2010 이문세 더 베스트’ 콘서트를 연다. 매회 1만석씩, 모두 3만석 규모인데 벌써 티켓이 동났다. 1만석 규모의 공연을 펼치는 건 1983년 데뷔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걱정이 좀 되는 건 사실이에요. 덩치는 커졌지만 소박한 느낌을 잃지 않는 공연이 될 겁니다.”

 요즘엔 후배 돌보는 일에도 열심이다. 지난달 TV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에 특별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후배들을 격려하는 따뜻한 심사평으로 화제를 모았다. 서울 홍익대 주변 클럽에도 불쑥 들러 인디 뮤지션들의 술값을 내주고 갔다는 목격담도 종종 들린다.

 그의 나이 올해로 쉰한 살. 하늘의 뜻을 깨친다는 지천명(知天命)마저 넘어섰다. 그는 “쉰을 넘기면서 작곡·작사가나 세션들이 돋보이는 게 결국 나한테도 덕이 되는 일이란 걸 깨달았다”며 미소를 보였다.

 과연 이문세란 이름은 뭇 사람들의 추억에만 머물지 않는 모양이다. 여전히 ‘저 타는 붉은 노을처럼’ 우리 대중음악계를 화려하게 물들이는 중이다. 공연 문의 02-747-1252.

글=정강현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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