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없는 중증 장애아를 자식처럼 돌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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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김태희 수간호사가 17일 서울시 어린이병원 43병동에서 입원 중인 복합 중증 장애아를 돌보고 있다. 김수간호사는 5년 전부터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소명으로 생각하고 일했는데 큰 상을 받았습니다. 병동에서 기뻐할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동료들에게도 고맙고요.”

 제34회 청백봉사상 대상을 받은 김태희(55·간호 6급)씨는 공무원 경력 33년째인 수간호사다. 그의 일터는 서울 내곡동 서울특별시 어린이병원 43병동.

 성장이 거의 멈추고, 맥박·호흡·산소포화도 등을 측정하는 EKG 모니터를 하루 종일 달고 사는 복합 중증 장애아 20명이 누워 있다. 코에 인공호흡기를 장착한 아이도 있다. 나이는 생후 4개월 갓난아기부터 16세까지, 가족이 없는 무연고 아이들이 태반이다. 아이들은 눈과 표정으로 대화한다.

 43병동에서 해마다 10명 이상의 아이들이 병상에서 생을 마감한다. 목소리를 들려주면 방긋 웃는 아이들과의 이별은 김씨에게 참기 힘든 고통이다. ‘어린 천사’와 정을 떼는 것은 심리적 트라우마(상처)로 남는다고 한다. 김씨는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면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직접 염을 한다”며 “허탈감·그리움으로 2주 정도는 제대로 먹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16일에도 한 아이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5년 전부터 이 병원에서 일하는 김씨의 하루는 환자들에게 ‘엄마 왔다’라고 신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물론 아이들의 대답은 없다.

“내 손자·손녀처럼 깨끗하게 키워야죠. 목욕을 매일 시키고, 이발은 한 달에 한 번씩 하도록 해요. 머리에 주사를 놓을 때도 이발을 해줍니다. 아이들의 외모를 단정하게 하기 위해 미용 기술을 배웠어요. 아이들의 분변 등 분비물에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병실 청소 등 위생관리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중증 환아(患兒) 병동은 간호사들에게 기피 부서다. 12명의 후배 간호사와 함께 근무하는데 버티지 못하고 사표를 쓰는 간호사도 종종 있다.

 “이곳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임무라고 생각해요. 2014년으로 예정된 정년을 여기서 맞고 싶어요.”

 김씨의 봉사와 사랑은 병동 밖에까지 이어진다. 그의 수첩에는 주말 스케줄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첫째 주는 아이들 간호를 위해 익혀둔 미용 기술을 살려 직장 동료들과 함께 군부대·양로원에서 하는 이발봉사, 둘째 주는 방배동 성모노인복지센터 등 시설에서 목욕봉사, 셋째 주는 지난해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장애인이 된 여동생 방문….

 김씨는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데도 남편(이성철·65)과 두 아이가 잘 이해한다.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자식교육”이라며 밝게 웃었다.

 그는 박봉의 월급도 쪼개 쓰는 기부천사다. 여고생 시절 봉사활동을 시작한 대전의 보육원 ‘천양원’과 장애인 보호시설인 ‘성모의 마을’, ‘주몽재활원’에 각각 월 1만∼1만2000원을 기부하고 있다. 장애 여동생에겐 수술비·병원비 외에 매달 50만원씩 생활비를 지원하며 조카들의 부모 역할까지 대신한다.

 김씨는 1976년 공주 간호전문대를 졸업한 뒤 천안시보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동안 한 차례도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

 두 자녀·손녀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그는 이타적 DNA를 타고난 사람처럼 보인다. 탤런트와 동명이인이어서 남들이 더 잘 기억해 준다고 한다. “봉사활동 가면 ‘사인해 달라’ ‘이름처럼 예쁘다’는 우스갯소리를 자주 들어요.”

글=박태균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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