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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보다 물가 잡기 … 돈줄 죄는 한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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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한국의 기준금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0월 14일자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하면서 내놓은 명분은 ‘환율 여건의 불확실성’이었다. 기준금리를 올리면 내외 금리차가 커지면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온다. 이는 한국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금통위는 당시 물가상승 압력이 커졌음에도 수출경기 부진을 더 우려하며 금리를 제자리에 묶었다.

 이 분위기가 16일에는 확 바뀌었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겸 금통위 의장은 걱정을 떨친 표정이었다. 그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린 뒤 기자간담회에서 “서울 G20 정상회의 결과 글로벌 환율 여건의 불확실성이 크게 완화됐다”고 말했다. G20 회의에서는 신흥국이 급격한 자본 유·출입을 규제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 이에 맞춰 기획재정부가 현재 자본 유·출입 규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이는 금통위의 운신의 폭을 넓혀준 효과가 있다. 한은의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주던 환율의 불확실성이라는 변수가 상당 부분 ‘통제’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금통위는 이날 ‘원칙’으로 돌아왔다. 한은은 통화정책의 최대 목적을 ‘물가안정’으로 삼는다. 물가를 안정시켜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뜻이다. 이미 물가는 큰 폭으로 뛰었다. 소비자물가가 9월에 3.6%(전년 동월 대비) 상승했고, 10월에는 4.1%까지 올랐다. 중기 물가안정 목표범위(2~4%)를 넘었다. 소비자물가에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생산자물가도 가파른 상승 커브를 그리고 있다.

 금통위는 물가상승 압력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돈줄 죄기를 결정했다. 이날 발표한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에서 금통위는 “경기상승이 이어지고, 국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물가상승 압력이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관심은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이냐다. 이날 금통위는 결정문에서 눈에 띄는 변화를 보였다. 지난해 4월부터 사용해 온 ‘금융 완화 기조’라는 문구를 20개월 만에 삭제한 것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결정문은 “통화정책은 한국 경제가 금융 완화 기조 하에서 견조한 성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물가안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운용하겠다”로 마무리됐다. 금융 완화 기조란 경기회복을 위해 시중에 넉넉히 돈이 돌게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 표현을 뺐다는 것은 앞으로 돈줄을 죄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 총재는 “그 표현이 빠졌다고 계속 금리인상을 시사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정책금리 수준은 금융 완화 기조에 가깝다”며 “금리는 매월 금통위가 적절히 판단해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애매모호한 화법으로 시장에 어정쩡한 신호를 보낸 것이다.

 시장은 그래서 금통위의 결정과는 엇나갔다. 이날 채권금리(국고채 3년물)은 3.32%로 전날보다 0.15%포인트 급락(채권값 상승)했다. 금리인상 시기가 늦어져 이미 인상분이 반영된 측면도 있지만 아직도 시장은 금통위의 행보를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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