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투트랙 감세’ 가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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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국회 기획재정위 전체회의에서 최근 감세 논란에 대해 “소득세 최고세율은 현행대로 유지하고, 법인세 최고세율은 예정대로 인하하자”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형수 기자]

한나라당이 ‘MB노믹스(이명박 정부의 경제기조)’의 상징인 감세를 두고 법인세 감세 기조를 유지하되, 소득세의 최고세율 감세안은 조정하는 쪽으로 사실상 입장을 선회했다.

 15일 안상수 대표는 “소득세 최고구간을 신설해 현행 최고세율(35%)을 적용하자”고 부분 감세 철회를 제안했다. 안 대표는 “여러 의견의 절충안”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표도 국회 기획재정위에 “소득세 최고구간에 대해선 현 세율(35%)을 유지하자”고 했다. 두 사람 다 법인세 인하안(22%→20%)은 그대로 가자는 쪽이다. 이른바 ‘투트랙 접근’이다. <본지 10월 29일자 3면> 방법론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소득세 감세안을 그대로 갈 순 없다는 데엔 일치한다.

 지난달 27일 정두언 최고위원이 감세 철회를 요구하고, 안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재검토에 나섰다가 청와대가 “감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밝힌 뒤 “단순 검토 지시”라고 물러설 때만 해도 감세 논쟁이 수그러드는 기류였다. 그러나 19일 만에 ‘소득세 감세 조정-법인세 인하 유지’란 입장이 나왔다. “‘부자감세’란 야권의 공세가 그만큼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란 게 정치권의 해석이다.

 ◆박근혜 "고소득층 소득세 감면 철회”=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구간(각각 과표 8800만원, 2억원 초과분) 세율을 2%포인트 인하할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박 전 대표와 안 대표 모두 소득세만 재론하자는 입장을 정했다.

 박 전 대표는 최고구간의 감세를 철회하자는 거다. 그는 “정부의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소득불균형도 심화됐다. 현행 세율을 유지하는 게 재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일부 참모가 “민감한 얘기를 굳이 할 필요는 없다”고 만류했으나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냈다. 주변에선 “2007년 경선 당시 박 전 대표의 감세 주장은 고소득층까지 감면해 주자는 게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정면 충돌은 피하는 모습이다. 그는 “명확히 해야 할 부분은 감세 전체가 아니라 최고 소득구간 세율에 국한된 문제”라고 말했다.

 안 대표는 “1억원 또는 1억2000만원 구간을 하나 더 만들면 고소득층에 대해선 감세를 적용하지 않고 그 이하 구간에 대해선 감세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소득분부터 8800만∼1억원(또는 1억2000만원)까지 33% 세율을 적용하고 그 초과분에 대해 35% 세율을 적용하자는 거다.

 ◆“감세 기조 대원칙”=이명박 대통령은 감세 논쟁을 두고 “이념적 논쟁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에서 제기되는 ‘부자감세’ 논란이 달갑지 않다는 뜻이다. 이 대통령은 또 “유보된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율(인하)을 2013년에 할지 1년 더 연장할지는 그때 경제사정을 봐서 하면 된다. 그걸 조정한다고 해서 (감세 기조의) 대원칙이 깨지는 건 아니다”라고도 했다. 시기를 조정할 순 있지만 감세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청와대의 기본적인 입장은 “국회 논의에 맡겨 두자”는 기류다. 국회에 입법권이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대로 감세되더라도 2012년 소득분에 대해 적용된다는 점 때문에 “내년에 논의해도 된다”(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는 입장이기도 하다.

 ◆“올해 결론 날 가능성”=안 대표나 박 전 대표는 철회 시기를 못박지 않았다. 안 대표와 가까운 인사는 “내년에 논의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논의가 본격화됐다는 점에서 올해 결론 날 가능성도 크다. 22일 이후 감세 철회를 논의하기 위한 의원총회가 예정돼 있기도 하다. 여권 내에선 “박 전 대표와 당 지도부가 소득세 감세안을 손보기로 한 마당에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이란 전망이다. 민심에 예민한 수도권 의원이 80여 명, 친박계가 50여 명이어서 일부 겹치는 걸 감안하더라도 당론 변경선(171명 중 114명)을 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권은 법인세 감세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청와대와 당 지도부는 감세안 유보에 부정적이었으나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야당 요구를 들어준 일도 있다.

글=고정애·이가영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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