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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G20 그 이후 … 해외자금 교란은 막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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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G20 서울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안심할 수 없다. G20 회의가 열리던 지난 11일 서울 증시는 몸살을 앓았다. 옵션 만기일인 이날 오후 단 2분 동안 한 외국계 헤지펀드가 2조원이 넘는 프로그램 매수차익 매물을 쏟아내 코스피지수가 3% 가까이 떨어졌다. 지수를 떨어뜨려 이익을 취하려는 해외자금의 투기적 거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길게 보면 1998년 외환위기와 2008년 외화 유동성 위기도 급격한 해외자본 유·출입에 따른 부작용이었다. 대외개방도가 높은 한국은 긴장을 풀 수 없다.

 G20 서울 정상회의 선언문에는 “선진국들은 과도한 환율 변동과 무질서한 움직임에 유의하고, 신흥국들은 과도한 자본이동 변동성을 완화한다”는 조항이 삽입돼 있다. 신흥국들이 거시 건전성을 해치는 외국자본 유입에 대해 제한된 범위에서 규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는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66년간 지탱해온 ‘국제자본 거래의 자유화’ 원칙의 중대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미국이 2차 양적완화(量的緩和)로 달러화를 살포하고, 중국이 위안화 가치절상을 꺼리면서 간접 피해를 본 신흥국들엔 자구 수단이 마련된 것이다.

 국제자본의 이동이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순(順)기능을 의심해선 안 된다. 국가 간의 비(非)정상적인 가격차이를 해소해준다. 그러나 지나친 쏠림현상은 부작용을 낳는다. 시장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역(逆)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물론 G20 서울선언을 악용해 자본이동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거나 환율 방어를 위해 해외자본의 유·출입을 규제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는 세계경제의 퇴행이다. 하지만 핫머니의 교란은 막아야 한다. 우리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거시경제의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파제다.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선진국에서 신흥시장으로 유입된 자금이 거품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G20 같은 국제공조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국제공조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1987년 세계 각국은 미국을 돕기 위해 공조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강력한 내수부양책을 쓰기로 한 루브르 합의다. 독일만 이 약속을 깨고 미국과 동반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후 일본은 거품, 미국은 블랙먼데이를 맞았지만 독일은 순항(順航)했다.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경험이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앞으로 위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요즘 전 세계는 전쟁 직후에나 볼 수 있던 엄청난 재정적자를 안고 있다. 금리는 경기후퇴를 막느라 유례없는 초저금리가 장기화되고 있다. 여기에다 양적 완화까지 유행이다. 이런 극약처방들의 결정적 약점은 장기복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어디서 어떤 위기가 일어나도 놀랄 일이 아니다. G20 서울회의 이후 오히려 국제시장의 변동성은 확대될 조짐이다. G20이 봉합한 갈등이 언제 터질지 모른다. 튼튼한 국제 공조를 다지는 한편으로, 한국의 자체 생존을 도모하는 지혜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