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마켓 워치] 해외투자, 신흥시장보다 원자재 비중 높일 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2면

요즘 투자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변수는 환율이 아닐까 싶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달러화 가치의 급락과 거기서 파생되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회오리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달러를 마구 찍어 낸 결과 세계를 떠도는 달러 유통량은 두 배로 팽창했다. 미국은 이것도 부족해 2차 양적 완화를 결정했다.

 지난 11일 도이치증권 창구에서 나온 외국인 매물 폭탄도 환율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 외화자금의 급속한 유·출입을 차단할 규제장치를 인정하려 하자, 이를 감지한 한 미국계 펀드가 한동안 원화 강세 흐름이 더딜 것으로 보고 일거에 환차익과 주가차익을 실현하기 위한 대량 매도를 감행했다는 것이다.

 마침 과잉 달러 유동성 때문에 국내 주가에도 거품이 끼지 않을까 걱정이 커지던 시점이었다. 덕분에 증시는 숨 고르기의 휴식을 취하고, 투자자들은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편할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됐다.

 이와 관련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최근 발언이 주목을 끈다. 박 회장은 2년 반 만에 국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 “투자자산 배분은 ‘국내 3 대 해외 7’이 바람직하며, 해외 투자는 신흥시장 주식을 중심으로 하라”고 조언했다. 그 역시 환율 요인을 강조했다. 박 회장은 “원화 절상이 계속되고 국내 제조업이 타격을 받을 텐데, 돈을 밖으로 내보내는 게 우리 모두를 돕는 길”이라고 말했다.

 ‘70% 해외 투자론’은 ‘길게 보면’이란 전제를 달았지만 파격임에 틀림없다. 박 회장의 영향력에 비춰 적잖은 투자자가 실행을 저울질할 법도 하다. 그러나 몇 가지 짚어 봐야 할 게 있다. 먼저 박 회장 말대로 원화 강세가 거스르기 힘든 대세이고, 외국인들은 여기에 편승하려 국내 증시로 계속 들어오고, 게다가 한국 기업들의 실적 상승이 주가 상승 속도를 능가하는 상황에서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해외 투자의 원칙 중 하나는 강세 통화 지역에 돈을 넣는 것이다. 환차익도 있지만 통화가 강세라는 얘기는 그 나라의 경제와 기업이 총체적으로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같은 관점에서 해외 투자는 자국 통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때 적극 모색할 전략이다. 한국은 어떤가. 향후 2~3년은 원화 가치가 세계 어느 신흥국 통화와 견줘도 강한 흐름을 보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하나, 경제 성장률이 높다고 주가도 거기에 비례해 크게 오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흥국 증시의 특징은 오를 때 크게 오르지만 내릴 때는 허무하게 무너지는 변동성의 위험이다. 흐름을 제대로 타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허탕 투자’를 하기 일쑤다. 최근 몇 년간 중국과 베트남 증시가 그랬고, 과거 코스피지수 500~1000에 갇혀 있던 한국 증시도 그랬다. 미국 등 선진국의 사례를 봐도 경제의 고도성장 때보다는 안정 성장기로 접어든 뒤 주가가 장기간 흔들림 없이 올랐다. 기업들이 주식 발행물량을 줄이고 주주 가치 높이기에 바짝 신경 쓰기 시작한 덕분이다.

 마지막으로 해외 투자는 물심양면으로 비용이 크다. 해외 펀드가 투자자들에게서 떼어 가는 수수료와 보수 등 총비용은 연 3% 안팎으로 국내 펀드의 두 배 규모다. 게다가 해외 펀드는 주문에서 결제까지 10일 안팎씩 길게 걸려 시장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도 힘들다.

 향후 2~3년은 투자 자산의 국내 비중을 50~70% 정도로 높게 유지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나머지를 해외에 투자하더라도 신흥시장 주식보다는 원자재 쪽의 비중을 더 높게 끌고 가는 게 어떨까 싶다. 달러 약세와 이에 따른 인플레 위험에 맞서는 데 원자재펀드만큼 좋은 투자 대상은 없다. 신흥시장 투자는 5년쯤 뒤부터 본격적으로 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김광기 경제 선임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