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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 홈런 두 방, 4년 전 ‘도하의 굴욕’ 날 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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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호 14면

추신수가(사진 왼쪽) 13일 아오티 야구장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야구 대만과의 경기 1회 말에 2점 홈런을 친 뒤 이대호의 축하를 받고 있다. [광저우=연합뉴스]

두 개의 야구 빅 이벤트가 13일 동시에 열렸다. 제16회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중국 광저우에서는 한국의 야구 대표팀이 대만과 예선리그 B조 첫 경기를 치렀다. 일본 도쿄에서는 한국시리즈 우승팀 SK 와이번스와 일본시리즈 우승팀 지바 롯데 머린스가 격돌했다. 이날 열린 두 경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격화되고 있는 한국-일본-대만의 야구 경쟁 양상을 압축해 보여주었다. 이 경쟁에 중국도 곧 가세할 것이 분명하다.

한국 야구, 대만 6대1 대파

류현진

한국은 대만과의 경기에서 투런 홈런 두 방을 날린 메이저리거 추신수(28·클리블랜드)의 활약에 힘입어 6-1로 승리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당한 수모(2-4)는 깨끗이 씻어냈지만 이날 경기로 우열을 모두 가린 것은 아니다. 점수 차가 제법 났지만 출혈도 컸다. 에이스 류현진(23·한화)뿐 아니라 봉중근(30·LG)까지 투입했다. 일찌감치 터진 추신수의 홈런이 없었다면 자칫 꼬일 수도 있는 경기 내용이었다.

추신수는 1회 첫 타석에서 대만 선발 린이하오로부터 왼쪽 담장을 넘기는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2-0으로 앞선 3회에서도 린이하오의 직구를 두들겨 중월 투런홈런을 토해냈다. 홈런 두 방으로 4타점을 쓸어 담은 추신수 덕분에 선발 류현진은 여유 있는 투구를 할 수 있었다. 류현진은 최고 구속 152㎞의 강속구와 날카로운 체인지업을 앞세워 대만 타선을 6이닝 동안 1실점으로 막았다.

한국은 3회에 등판한 대만의 두 번째 투수 양야오쉰의 강속구에 잠시 고전했지만 4-1이던 6회 정근우의 적시 2루타와 상대 폭투로 2점을 더 달아났다. 승기를 잡았다고 본 한국 벤치는 류현진을 불러들이고 7회 봉중근, 8회 안지만(27·삼성)를 투입해 5점차 승리를 지켰다.
도쿄에서 SK는 롯데에 0-3으로 졌다. 안타를 두 개밖에 치지 못했다. 이 경기는 단일팀 간의 대결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양국 야구의 자존심을 건 ‘야구전쟁’이었다. 팬들은 이날 광저우와 도쿄에서 열린 경기를 통해 아시아 야구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다.
 
대만, 총통이 ‘야구국시회의’ 소집
지난해 12월. 마잉주 대만 총통은 야구국시회의(棒球國是會議)를 열었다. 대만의 국시회의는 국가 차원의 대책을 수립할 때 개최하는데, 스포츠가 의제로 설정된 건 처음이었다. 총리 격인 행정원 원장을 비롯한 정계 최고위층이 참석했고, 경찰청장의 역할을 하는 경정서장도 자리했다. 야구단 사장과 전문가, 팬 그룹도 참석했다. 야구를 국기(國技)로 삼는 대만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대만 프로야구는 수술대에 올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국에 7-8로 패했고, 그해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한국과의 1차전에서 0-9로 대패했다. 깔봤던 중국에 추격당했고, 한국과의 격차는 갈수록 커졌다.

게다가 대만 프로야구는 2008~2009년 승부조작 파문으로 한 팀이 해체되고 수십 명의 선수가 제명되는 등 파국으로 치달았다. 야구국시회의는 “2010년을 야구진흥원년으로 삼겠다”는 선언으로 끝났다. 대만은 2010년을 승부조작 스캔들 없이 보냈다. 그러고는 한국과의 클럽 챔피언십 창설을 추진했다.

아시아 야구가 한·일전으로 압축되자 대만이 급해졌다. 스폰서를 끌어 모아 1000만 대만 달러(약 3억6000만원) 상금을 내걸고 한국·대만 클럽 챔피언십 대회를 열었다. SK를 초청해 1승1패를 했으니 대만으로서는 대성공이었다.

리그 정비와 국제대회 경쟁력 상승으로 자신감을 얻은 대만은 내년엔 아시아시리즈를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대만은 한국·일본과의 정기전을 통해 계속 성장하고 싶어 한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서 자극을 받고 싶어 한다. 대만이 앞장서면서 아시아 야구 교류의 장이 부활할 가능성은 높다.
 
야구 수준은 아직 일본-한국-대만 순
대만 야구의 분발로 아시아 3개국 야구는 발전적 경쟁체제를 갖출 전망이다. 1990년대까지 일본-한국-대만 순이었던 야구 경쟁력 서열이 최근 조금이나마 흔들리고 있다. 순서가 바뀌었다고 보기 어렵지만 한국이 일본을 잡고, 대만은 한국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국 프로야구는 82년 출범해 지속적 성장을 해왔다.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2009년 WBC 준우승 이후 매년 600만 명 가까운 관중이 야구장을 찾을 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야구를 국기로 삼고 있는 대만은 90년에야 프로가 출범했다. 그러나 사회인 리그를 포함해 200만 명의 야구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야구 위상으로만 본다면 세계 최고다. 도박 문제만 없었다면 대만 야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발전해 있을 것이다.

한국·일본·대만 등 동북아시아 3개국에서 공통적으로 인기가 높은 스포츠가 야구다. 그 때문에 정부와 기업의 지원, 그리고 팬들의 응원을 받고 성장했다. 3개국의 국가대항전은 그래서 더욱 재미있고 치열하다.

얼마 전까지 한국은 대만과 함께 아시아 최강국 일본을 추격했다. 그러면서도 ‘대만보다는 우리가 한 수 위’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2003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대만에 4-5, 일본에 0-2로 패했다. 대회 3위에 그치면서 2장이 걸린 2004 아테네 올림픽 출전권도 얻지 못했다. 잔뜩 벼르고 나섰던 도하 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대만과 일본에 연패한 뒤 동메달에 머물렀다.

아시아 2위 지위가 흔들리는 것 같았지만 일본 추격은 계속됐다. 한·일 수퍼게임이 열렸던 90년대만 해도 일본야구에 한참 뒤진 것 같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격차를 상당히 좁혔다. 아시아시리즈 우승은 일본 챔피언에 계속 내줬지만 SK는 2007년 주니치 드래건스를, 2008년 세이부 라이온스를 예선전에서 한 차례씩 꺾었다. 대표 팀끼리 맞붙은 WBC에서는 일본과 2006년 2승1패, 2009년 2승3패를 기록했다.

대륙의 야구, 더그아웃에서 잠을 깨다
광저우를 찾은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중국 야구를 지켜보라. 지금은 한 수 아래지만 가까운 미래에 무섭게 치고 올라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은 모든 면에서 미국을 이기고 싶어 하지 않는가. 야구가 좋은 수단이다. 곧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야구는 현재 세미프로 형식의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정식리그를 운영하려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4년마다 열리는 전국체육대회가 가장 큰 행사일 만큼 국제경쟁력은 아직 약하다. 중국의 야구대표 팀은 미국 메이저리그로부터 지도자와 장비 등을 지원받고 있다.

중국야구의 잠재력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드러났다. 아시아 야구 변방에 있던 중국이 안방에서 대만을 이겼다. 그뿐 아니라 한국과 연장 11회(한국 1-0 승)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다.

야구는 아시아 스포츠 콘텐트 경쟁의 장이 될 수 있다. 일본은 정교한 기술을 앞세워 미국 메이
저리그를 위협하고 있다. 치밀한 전력분석과 기술개발로 2006, 2009 WBC에서 우승했다. 오히려 일본의 최대 난적은 한국이었다.

한국야구는 벤치마킹을 통한 압축 성장을 이뤄냈다. 적어도 단기전에서는 파워 넘치는 미국과도, 세밀한 일본과도 붙어볼 만해졌다. 기술에서 앞선 일본은 한국 선수들의 당당한 체격과 거기서 뿜어나오는 힘을 두려워한다.

야구를 봉구(棒球)로 부르는 대만은 화끈한 타격을 자랑한다. 게다가 공격 위주의 플레이로는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판단, 작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 여기에 기초 종목 기반이 튼튼한 중국까지 가세한다면 동북아시아의 ‘야구 지형도’는 향후 5년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급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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