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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도 vs 중국·러시아 … 달러전쟁 편갈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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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의욕이 과했을까. 윤 장관은 지난달 경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합의를 발표하면서 “이로써 환율 전쟁이 종식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G20 정상회의가 다가올수록 주요국 간 틈새는 좀 더 벌어지고 있다. 사공일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장은 9일 G20 회원국 간 환율 해법의 핵심인 경상수지 가이드라인과 관련,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서) 언제까지 하기로 하자는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말했다. 경상수지 과다 흑자국과 적자국 간 균형을 위한 관리목표의 수치화를 포기하는 대신, 합의 일정과 시한을 담는 데 주력하겠다는 의미다. 내용의 합의보다 일정의 합의로 후퇴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서는 ‘다자간 협력을 강화하고, 과도한 대외 불균형을 줄이며, 경상수지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정책수단을 강구한다’는 경주 G20 코뮈니케가 그대로 반영될 전망이다. 또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의 구체화는 내년 의장국인 프랑스가 바통을 이어받아 마련한다는 식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G20 경주 재무장관회의에서 한국과 미국은 ‘경상수지를 국내총생산(GDP)의 ±4% 이내에서 관리한다’는 중재안을 제시했으나 최종 합의엔 이르지 못했다.

 ◆주요국 편짜기 가속화=미·중 환율 갈등에서 시작된 주요국 간 기싸움은 G20 서울 정상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편짜기’ 양상이 뚜렷해졌다. 뉴욕 타임스는 9일 만모한 싱 인도 총리가 전날 뉴델리에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지지 제스처를 보였다고 전했다. 싱 총리는 “강력하고 견고하며 빠르게 성장하는 미국이 전 세계의 이익”이라며 “미국의 성장을 부추기는 어떤 것도 전 세계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 뭇매 맞고 있는 미국의 ‘양적 완화’를 지지한 것으로 풀이됐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과 기싸움을 하고 있는 중국 편을 들었다. 로이터에 따르면 러시아의 G20 실무 책임자인 아르카디 드보르코비치는 “미국이 돈을 더 풀기에 앞서 다른 나라들과 먼저 협의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런 입장 표명은 러시아가 G20에서 중국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독일·브라질 같은 동조세력을 등에 업고 미국의 양적 완화에 갈수록 거세게 불만의 목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지난 8일 주광야오(朱光耀) 재정부 부부장은 “미국이 그런 정책으로 과연 경기회복을 촉진할 수 있는지,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양적 완화는 일각에서 경주 합의를 깬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합의를 깬 미국과 나머지 19개국의 대결(G19+1)이란 새로운 구도가 만들어졌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양상은 훨씬 복잡한 듯하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9일 ‘전 세계의 7개 대결 축’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G20이 서울 정상회의를 통해 ‘세계 운영위원회’가 될 수 있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면서 G20의 구도가 ‘친미’와 ‘친중’만이 아닌 ‘7개 축의 대결’로 훨씬 복잡하다고 분석했다. 7개 대결 축은 ▶무역 흑자국 대 적자국 ▶환율 조작국과 피조작국 ▶재정 긴축국 대 재정 확장국 ▶민주국과 독재국 ▶서방과 비서방 ▶(통화 주권)간섭주의 대 불간섭주의 ▶대국 대 소국 등이다.

 ◆파리 회의로 숙제 넘길 듯=G20 정상들은 경주 G20 장관회의의 합의사항을 재천명해 환율 문제의 심각성을 공동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에 그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최종 합의안은 ▶불균형의 본질과 조정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원인을 평가할 워킹 그룹을 운영해 ▶내년 상·하반기에 G20 재무장관회의에 추진 상황을 보고하며 ▶내년 하반기 파리 정상회의에서 도출하는 방식으로 합의될 가능성이 크다.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 지향’과 ‘경쟁적인 통화 절하 자제’라는 성과에 이어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도출 시한의 합의까지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율 전쟁의 종식은 아니지만 종식의 수순을 찾아내 G20 의장국으로서의 소임은 충분히 했다고 자부할 만하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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