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토크 18] '샤넬보다 더 샤넬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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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색 선글라스가 트레이드 마크인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루이뷔통의 마크 제이콥스, 에르메스의 장 폴 고티에, 그리고 크리스찬 디올의 존 갈리아노에 관한 글을 쓰면서 아직까지 이 사람을 거론하지 않았으니 필경 그의 팬들은 기분이 몹시 상했을 일이다. 하지만 한 회 일찍 나오거나 한 회 늦게 나오는 걸로 그들의 능력과 열정을 줄 세울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다 알 것이다. 그러니 너무 섭섭해 할 필요는 없다.

검정색 선글라스와 포니테일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 말이다. 1933년 9월 10일 독일 함부르크 태생이다. 14세에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으며,16세에 국제양모사무국 주최 디자인 콘테스트에서 여성용 코트 부문 1위를 차지해 오뜨쿠튀르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1965년 펜디 책임 디자이너가 됐으며, 70~97년엔 클로에 수석 디자이너도 지냈다. 75년 자신의 이름을 딴 향수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타고난 감각과 열정으로 빠른 시간에 세계 패션계에 자신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나갔다.

마침내 1983년 샤넬의 아트 디렉터로 취임하면서 자신의 디자인 세계를 세상에 보여주었다. 다음해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됐고, 지금껏 이 자리를 놓지 않고 있다. 98년엔 라거펠트 갤러리를 론칭했다. 2004년 11월엔 새로운 타이틀을 하나 더 추가했다. 스웨덴의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의 수석 디자이너를 맡은 것이다. 샤넬과 H&M의 수석 디자이너를 동시에 맡는다는 건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도 든다. 패션과 디자인에 관한 한 자신을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는 철학인지 아리송하다. 옷을 만든다는 것 말고는 두 회사의 디자인 컨셥과 타깃은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여러 회사에서 일하기에 그의 디자인 성향을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간판 타이틀인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담은 클래시즘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지적이고 현대적인 감각을 강조한다. 물론 섹시한 여성스러움의 추구는 기본이다. 동시대의 다른 유명 디자이너에 비해 그의 작품은 강한 파격을 재미 삼지 않는다. 전위적이거나 실험적이지도 않다. 여기엔 77세라는 그의 나이도 작용할 듯 싶다.

83년 샤넬에서 첫 컬렉션 발표 때 파리 패션계는 "샤넬이 무덤에서 일어났다"며 그의 등장에 환호했다. 그만큼 그는 오늘날의 샤넬이 있게 한 주인공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혹시 창업자 코코 샤넬을 뛰어넘는 건 아닐까. 일부에서는 그렇게까지 말하는 이들도 있다. 코코 샤넬보다 더 샤넬적갽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 시대의 원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사진에 남다른 조예가 있다.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샤넬의 잡지사진과 광고 촬영에 직접 나선다. 디자이너가 아니었다면 사진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는 아침에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다. 그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혹시 어떤 콤플렉스의 소산은 아닐까. 또 모든 손가락을 공평하게 대우하듯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운다. 음악에서 사진,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 관심이 많은데, 이런 관심은 곧 스타일이 된다고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말한다.

그는 기록적인 감량으로도 유명세를 탔다. 7년간 디올 옴므를 이끌며 전 세계적으로 스키니 돌풍을 일으킨 에디 슬리먼의 옷을 소화해 내기 위해 몸무게를 42kg나 뺐다. 이 다이어트에 성공한 후 거의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다. 당연히 그의 다이어트 비법은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는 식물성과 미네랄 성분을 기본으로 한 식이요법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지방 함량이 적으면서도 맛 좋은 생선과 기름기 없는 살코기, 통밀 빵, 다양한 종류의 과일과 채소, 칼로리가 낮은 치즈를 즐겨 먹었고, 비타민과 식물성 섬유질은 약으로 섭취했다. 하지만 물 마시기는 싫어했다. 하루 3리터씩 마셔야 하는 물 대신 매 시간 라이트 콜라 한 잔을 마셨다. 덕분에 라이트 콜라가 한 때 파리에서 아주 특별한 음료로 대접받기도 했다.

그는 보디가드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 두 명을 언제나 데리고 다닌다. 똑같은 아이팟을 10개 넘게 가지고 있으며, 여행 때마다 수백 개의 반지를 갖고 다닌다. 어릴 적 성추행 당한 일이나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도 털어놓은 적이 있다. 멀미가 심해 10살 때부터 자동차나 기차를 타면 할머니가 만들어 준 쿠션을 배에 대고 다녔다. ‘여행 잘하거라’는 문구가 새겨진 쿠션은 이제 낡고 해졌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지금까지도 그의 여행 필수품에서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심상복 기자(포브스코리아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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