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기사 쓰고 “광고 주면 빼주겠다” … 대기업, 인터넷 매체 횡포에 시달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1. 대기업 A사는 지난해 초 실적 악화로 임금을 동결하고 정리해고를 하는 등 긴축 경영에 들어갔다. 이즈음 인터넷 언론매체인 B사는 A사 제품에 대한 흠집 내기성 기사를 수차례 실었다. 악의적인 보도 중단을 요구하자 B사는 광고 게재를 요구했다. A사는 회사 경영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고려해 이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2. 또 다른 대기업 C사는 인터넷 언론매체 D사로부터 ‘부정적 기사를 취재할 계획인데, 광고를 주면 빼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C사가 이를 거부하자 D사는 사실이 아닌 얘기를 기사화했고, 이 기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가 수만 명의 독자가 읽게 됐다. C사는 해당 기사에 대한 삭제 또는 정정을 요구했으나 D사는 그 대가로 협찬금을 요구했다. C사 역시 현금 협찬을 통해 문제를 풀어야 했다.

 대기업 가운데 절반가량은 인터넷 언론매체로부터 이 같은 피해를 보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재계 30대 그룹 홍보 책임자로 구성된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홍보협의회(회장 장일형 한화그룹 부사장)는 7일 회원사 426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의 46%가 인터넷 매체 보도로 인해 기업 이미지 실추, 명예훼손 등을 당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피해 사례로는 ▶오보·왜곡보도(46%) ▶무리한 협찬·광고 요구(45%) 등을 꼽았다. 대기업들은 인터넷 매체의 문제점으로 ▶부실한 자체 검증 기능에 따른 기사 신뢰성 부족(43%) ▶클릭 수를 높이기 위한 선정적 제목 뽑기(37%) 등을 지적했다.

 전경련 경제홍보협의회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매체와 광고주·한국언론진흥재단 등이 참여해 인터넷 매체 설립요건, 퇴출 제도 등을 논의하는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칭)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현재 3인으로 돼 있는 인터넷 매체의 취재·편집인력 등록 기준을 강화하거나 오보·왜곡보도가 잦은 인터넷 매체에 대해 일정 기간 발행을 정지하게 하는 등의 규제 방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한편 지난해 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된 인터넷 매체는 1698개였다. 2005년(286개) 이후 다섯 배 가까이 늘었다.

이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