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뜨겁게 … 미술 온도를 느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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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황인기씨의 작품 "여명". 미술관 한쪽 벽을 뒤덮은 보랏빛 무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감성이지만, 한국 실경 산수화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디지털 기법과 플라스틱 레고의 물성은 이성으로 다가온다.

찬 미술, 뜨거운 미술이 있을까. 붉은 색 계통이 더운 느낌을 주고, 푸른 색 계열이 시원한 감을 풍기는 걸 보면 온도가 다른 미술도 있을 것 같다.

29일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에서 막을 올리는 '쿨(Cool) & 웜(Warm)'은 미술 속에서 차가움과 뜨거움을 찾아보는 기획전이다. 차가움은 이성을, 뜨거움을 감성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이성적인 미술, 감성적인 미술을 갈라보고 각각의 특성을 뜯어보자는 자리다. 과연 하나의 미술 작품을 이성이냐 감성이냐로 나눌 수 있을까.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불려나온 19명 작가는 체온 실험실이 된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본관 1층 들머리에서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은 황인기씨의 '디지털 산수화'다. 보랏빛 화려함이 가슴을 달구지만 공사판에서 거둬온 못 자국 투성이의 투박한 화면은 그 정염을 식혀준다. 플라스틱 레고로 오밀조밀 표현한 한국 산수는 그럴듯하면서 현대적 맛을 풍긴다. 손맛과 기교가 어우러졌다. 미술 속에 녹아든 이성과 감성을 무 자르듯 할 수는 없는 법이다.

피어난 꽃 속에 숨은 그림찾기처럼 온갖 사물을 달아놓은 황규태씨의 사진 '큰일 났다, 봄이 왔다', 벽과 바닥에 착 달라붙어 건축물의 일부가 되고 전시작품의 배경이 된 홍승혜씨의 '그림자', 벽에 붙은 거울을 이용해 몇 마리 개를 수십마리 개떼로 마술을 피운 조덕현씨의 '아쉬켈로의 개' 모두 뜨거운가 싶으면 차고, 차가운가 싶으면 뜨겁다. 보는 이의 머리와 마음에 따라 감상은 자유다.

작품 안에 붙인 인공지능 센서에 따라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안규철씨의 작품 '서성거림'도 그렇다. 평범한 종이상자 더미는 멈춰있을 때는 쓰레기로 인식되지만 그 버려진 물건이 갑자기 움직이며 따라올 때 우리 가슴은 뛴다.

김범.김수자.김영진.김호득.노상균.문범.심재현.오인환.우순옥.윤영석.윤석남.이기봉.이인현.홍명섭씨의 작품 앞에서 이성과 감성의 저울을 가늠해보는 일이 이번 전시의 재미다.

성곡미술관 열 돌 기념전으로 '쿨 & 웜'을 기획한 신정아 학예연구실장은 "현대미술의 두 측면, 즉 독창성을 드러내 주는 정신적인 측면인 '감성'과 작품을 완성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측면인 '이성'의 조화를 보여주고자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6월 5일까지. 02-737-765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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