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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카드깡까지 하며 연구비 횡령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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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가 등에서 지원하는 연구비 1억여원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난 서울대 공대 교수가 검찰에 고발됐다. 대학 교수의 연구비 착복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대학 사회의 고질적이고 뿌리 깊은 부패현상이다. 교수 사이에서는 학술진흥재단의 연구비와 기업체의 지원.후원금은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다. 이번에는 국내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의 교수조차 악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 충격적이다.

연구비 횡령 수법은 다양하다. 연구보조 인력인 대학원생의 인건비를 지급한 뒤 세미나 장소 사용료로 회수하거나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인력의 비용을 과다계상하는 방식이 가장 흔하다. 논문 지도와 임용 추천서가 절실한 제자의 몇 푼 되지 않는 연구보조비를 가로채는 것은 스승이 할 짓이 아니다. 또 재료를 구입한 것처럼 허위 계산서를 발급받거나 연구비 카드 사용후 납품업체로부터 되돌려 받는 경우도 있다. 저잣거리에서나 있을 법한 카드깡이 상아탑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교수 사회의 도덕적 해이가 이 정도인가. 오죽하면 제자가 부방위에 투서하거나 대학 홈페이지에 올리겠는가.

교수의 교내.외 연구비의 유용과 착복은 학자적 양심에 맡기거나 자율적 정화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연구비를 빼돌려 부동산을 매입할 만큼 타락한 연구비 불법 지출을 원천봉쇄할 감사 시스템이 필요하다. 연구계획서를 전산화해 지원기관이 언제라도 경비 사용 내역을 점검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비리에 연루된 교수는 엄벌해야 한다. 검찰과 경찰의 철저한 수사는 물론이고 대학의 징계 강화가 절실하다. 그동안 징계 내용을 보면 감봉.정직.견책.경고가 고작이다. 법원의 형량도 벌금형이나 기소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 다시 강의를 맡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교수의 연구비 횡령을 고발한 대학원생과 강사는 퇴출되는 등 되레 불이익을 받는다. 정부는 연구비 부당 집행의 악순환을 끊을 종합대책을 내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