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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섹시한' 이효리를 원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섹시 스타 이효리가 연기자로 변신, 관심을 모은 SBS 드라마 '세잎클로버'가 15일 끝났다.

이효리 캐스팅-촬영-방송 당일까지 집중된 스포트라이트는 그러나 첫 방송에서 일찌감치 빛을 거뒀다.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고 믿고픈 이효리 팬들의 자위는 10%를 밑도는 시청률 앞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동시에 '세잎클로버'를 통해 또 다른 비상을 꿈꾸던 이효리도 일단 날개를 접은 채 후일을 기약하기에 이르렀다.

스타 가수의 드라마 '외도'는 이미 트렌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며 아이돌 스타덤에서 점점 멀어지는 데다 음반 시장도 침체일로라 활동영역을 연기로 넓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연기에 도전, 승리한 여자 가수는 특히 드물다. 그룹 'SES' 출신 유진 정도를 빼면 성공 케이스가 없다시피 하다.

이효리와 함께 그룹 '핑클'에서 활약한 성유리, 그룹 '쥬얼리'의 박정아의 연기 성적표도 만족할만한 수준은 못됐다.

2003년 SBS '천년지애', MBC '황태자의 첫사랑' 등에 여주인공으로 나선 성유리는 연기력 부족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시청률 보증수표'라는 평을 듣는 작가와 연출자가 동원됐건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SBS '남자가 사랑할 때'로 만능 엔터테이너 반열을 넘본 박정아도 역시 역부족이었다.

이들 스타 여가수의 외모는 탤런트급이다. 그러나 연기는 노래나 춤이 아니다. 연기 초보자에게 극을 이끄는 힘을 주문하는 것은 무리다.

드라마 제작진은 이들이 오랜 기간 방송 카메라에 익숙해진 상태라는 점에 희망을 걸며 '혹시나' 했지만, 시청자들은 '역시나'하며 탤런트가 돼버린 여가수들을 외면했다. 무대에서 드라마 세트로 옮긴 여가수들의 이미지 변신 정도는 팬들이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팬들이 사랑한 것은 해당 여가수의 정형화한 캐릭터였다. 아이돌 가수, 특히 여자 가수의 경우 하나의 캐릭터 상품처럼 자신만의 이미지가 고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중이 원하고, 또 자신의 특성을 살려 수년간 구축해온 이미지를 단숨에 떨쳐버리려는 시도는 실패를 불렀다.

밝고 경쾌하며 섹시하면서 도회적인 인상으로 굳어버린 이효리가 털털하고 수수한 여성근로자를 연기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시청자는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키 크고 시원시원하며 남성스럽기조차한 발랄함을 버린 박정아에게 주어진 청순가련형 비련의 여주인공역은 버거웠다.

'천년지애'는 성유리에게 그나마 완충지대였다. 지극히 여성스러운 백제공주 캐릭터는 성유리의 이미지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천년지애'로 연기 워밍업을 마쳤다고 판단했을까, '황태자의 첫사랑' 중 좌충우돌 명랑소녀는 당사자에게도, 시청자에게도 낯설기만 했다는 중평이다.

주연급 연기자로 급부상한 유진은 가수 시절의 이미지를 고수하고 있다. 당차고 밝으며 꿋꿋하다. 팬들이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 그대로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로페즈 등 연기와 노래를 넘나드는 연예인은 흔하다. 연기를 하면서 노래 덕을 보고, 음반을 내면 연기 덕을 본다. 위기감과 조급증에 쫓겨 고육지책으로 연기를 택했다면 기대난망인 윈-윈이다.

타당한 이유를 생략한 급격한 이미지 변신은 돌파구가 아니라 무덤이 될 수도 있다.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김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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