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 10년 만에 최대 시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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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이 15일 강경파의 폭력 저지로 임시 대의원 대회가 무산되자 승용차를 타고 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변선구 기자

민주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 여부를 결정하는 표결이 또 무산됐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1주일 이내에 대의원 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동계에서는 극심한 내부 갈등에 빠진 민주노총이 대의원 대회를 열지 못할 가능성이 클뿐만 아니라 노사정 대화 복귀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따라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제정 등 민감한 현안을 둘러싼 노사정의 갈등은 격화할 전망이다.

◆민주노총 왜 이러나=민주노총에 소속된 일부 강성 노조는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다. 폭력사태를 주도한 세력은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전노투)라는 외곽단체지만 이들 뒤에는 노사정 대화를 반대하는 현장 노조들이 포진해 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노사정 대화에 참여했지만 들러리 역할에 그쳤던 과거의 경험이 일부 현장 노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98년 공공.금융 구조조정 문제를 다룰 때만 해도 경제부총리가 노사정 회의에 참여하기 전에 미리 기자회견을 열어 방향을 제시하는 등 지나치게 일방적이었다는 것이다.

강성 노조의 노사정 대화에 대한 불신은 현 이수호 위원장 체제에 대한 불신과 연결돼 있다. 현 집행부는 노사정 대화 복귀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체 대의원 중 이 위원장을 반대하는 강성노조원의 비중은 20~30% 정도로 분석되고 있다. 만일 표결에 들어갈 경우 노사정 대화 복귀 쪽으로 결론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강성노조는 '전노투'와 같은 외곽단체를 동원, 회의 자체를 무산시키고 만 것이다.

◆민주노총 갈등 수습될까=거듭된 폭력사태로 민주노총 조직은 내부 분열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

우선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현 집행부는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어 사실상 조직을 끌고 나가기 힘든 상황이 됐다. 15일 대의원 대회에서 폭력사태가 있을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이를 저지하지 못한 것은 집행부 의 지도력 한계를 드러낸 대목이다. 대신 사회적 대화 복귀가 무산됨에 따라 주도권을 쥐게 된 강경파의 공세적 투쟁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노사정 대화 복귀문제가 표결이라는 민주적 절차가 아니라 내부 갈등으로 무산된 것은 두고두고 민주노총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화 복귀에 찬성하는 다수의 대의원과 표결처리를 방해한 반대세력의 반목이 화합하기 힘든 수준으로 깊어질 것이라는 관측인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두 차례나 폭력사태를 주도한 과격세력에 대해 징계 등 강력히 대처할 방침이다. 이럴 경우 입장을 달리하는 세력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가능성이 크다.

민주노총이 95년 10월 출범 이후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는 것이다.

◆노사관계에 먹구름=정부와 민주노총의 충돌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회는 그동안 민주노총의 대화 참여를 기다리며 처리를 미뤄왔던 비정규직 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킬 방침이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지난 2월 임시국회에서 처리를 한 차례 유보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은 4월 1일 경고성 총파업을 한 뒤 국회가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무기한 총파업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노사정위 역시 민감한 현안이 망라된 '노사관계 로드맵(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다. 노사정위는 "오는 9월이 논의를 마쳐야 하는 시한이기 때문에 민주노총이 참여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릴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도 "노사관계 로드맵은 민주노총의 참여 여부에 상관없이 올해 안에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민주노총이 빠진 상태에서 중요한 노동 현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민주노총은 외곽에서'장외투쟁'을 벌이는 기존의 갈등적 노사정관계가 올해에도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한편 노사정위에 계속 남아 있는 한국노총은 비정규직 법안, 노사관계 로드맵, 노사정위 개편 등 각종 현안의 논의과정에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갈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 이용득 위원장은 "모처럼 경기가 살아나는 것에 맞춰 노사정이 진지한 대화와 대타협을 통해 노동현안을 해결해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jcomm@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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