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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한인 이민자의 삶, 미국인에 들려주고 싶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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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 축제에 참가한 박이슬씨가 행사장을 찾은 팬들과 얘기하며 웃고 있다.

"시를 통해 제 가족과 한인사회, 그리고 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한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미국인에게 들려주고 싶은 거지요."

미국에서 젊지만 역량있는 시인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박이슬(27)씨. 그는 8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유니온스퀘어파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계 문화유산의 달' 행사에 참석해 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시 가운데 '제주도의 꿈(Jejudo Dreams)'을 낭송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유세프 코니아카가 심사하는 '2003년 미국 최고의 시' 수상의 영예를 차지한 시다.

"생선 냄새는 나의 치욕이었고 비밀이었다. 하루에 샤워를 세 번이나 했던 것도, 학교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차에서 내린 것도, 그래서 화이트스톤(박씨가 자란 동네) 아이들이 내 아버지가 생선 냄새 나는 초록색 밴을 몬다는 사실을 모르게 하고, 나를 보고 코를 찡그리며 생선 냄새가 난다고 얘기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어렸을 적 그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창피했고, 생선가게를 운영하던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런 소녀가 아시아인 최초로, 또 여성 최초로 지난해 4월 뉴욕 퀸스의 계관시인으로 뽑혔다. 1937년 제정된 퀸스 계관시인은 3년 임기 동안 퀸스 지역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각종 문화활동을 벌인다. 계관시인이 된 후 그는 뉴욕 타임스 등 여러 언론에서 조명을 받았으며, 그만큼 더 바빠졌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는 영화 케이블방송인 HBO의 프로그램에 참가, 미국 51개 도시를 순회하며 문화행사를 벌였다.

그는 2003년에 시집 '이 물의 온도(Temperature of This Water)'를 출간했다. 이 시집엔 '제주도의 꿈' 외에 '민비' '4.29(LA 폭동)' '야채가게 삼촌' 등 한인 이민자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나는 시가 가득하다.

박씨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누구보다도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웬만한 의사소통은 한국어로 할 수 있다.

그는 한인들이 업신여김을 당할 때 가장 속상하다고 했다.

"올 초 맨해튼의 한 FM 방송이 지진해일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노래를 내보냈지요. 또 뉴저지의 한 방송국 사회자는 얼마 전 에디슨시 시장 후보로 나선 한인과 아시아인 전체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어요. 이런 일을 보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한인들이 똘똘 뭉쳐 목소리를 높이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2003년 미주 중앙일보가 선정한 꿈나무상(문학부문) 수상자이기도 한 박씨는 뉴욕시 북쪽의 웨체스터 소재 사라로렌스대에서 문예창작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한때 부모의 요구로 뉴욕대(NYU) 경영대학원에 적을 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NYU 대학원에서 창작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박씨는 "앞으로는 한인 2세가 미국땅에서 겪는 일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지사=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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