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정체성 조사] "역사 자랑스럽다" 34개국 중 24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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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자기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는다. 자기의 존재감을 국가에서 찾기보다 가족이나 직업.나이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광복 60년-. 한국의 국력은 세계 10위권이지만 한국인의 자부심은 바닥에 머물러 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의 김재온(사회학) 석좌교수가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와 국제사회조사(ISSP) 자료를 이용해 분석한 '2003년도 세계 34개국 국민 정체성 비교 연구'의 내용이다.

KGSS에 따르면 '세계에 미치는 한국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한국인의 1.8%가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14.6%가 '약간 자랑스럽다'고 대답했다.

반면 23.5%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56.0%는 '별로 자랑스럽지 않다'고 했다. '자랑스럽다'는 쪽은 앞의 두 답변을 합쳐 16.4%며, '자랑스럽지 않다'는 뒤의 둘을 합쳐 79.5%다. 김 교수가 이 같은 방식으로 답변들을 분석, '자국의 세계적 영향력'에 대한 자부심을 국가별로 비교한 결과 한국은 34개 나라 중 서른셋째로 나타났다.

주변국 사람들의 자부심은 어느 정도일까. ISSP 자료에 의하면 미국인은 자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묻는 같은 질문에 74.4%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34개국 중 1위다. 일본인은 29.1%, 러시아인은 29.0%다. 일본인의 국가영향력에 대한 자부심은 필리핀.폴란드 사람과 공동 20위이고, 러시아인은 23위다. 중국은 ISSP 회원국이 아니라 이 조사에서 빠졌다. 국가자부심에 대한 조사는 '정치적 영향력'을 포함해 10가지 항목에서 이뤄졌다.

군사력.민주정치 실현 항목에서도 한국과 미국인의 자부심 격차는 두드러진다. 군사력에 대한 자부심은 미국인이 2위, 한국인이 26위다. 1위는 이스라엘인이며 일본인은 슬로바키아인과 공동 19위다. 민주정치의 작동 항목에서 미국인의 자부심은 1위, 한국인은 25위로 하위권이다. 일본인(19위).필리핀인(20위).대만인(23위)보다 낮다.

일본인의 자부심은 예술(3위).과학(6위) 분야에서 높은 편이다. 한국인은 예술에서 32위, 과학에서 27위다. 국력지수에서 2, 3위인 일본.독일이 역사 분야의 국민 자부심에선 각각 27위, 33~34위(독일은 동독 지역과 서독 지역을 따로 조사했음)로 한국(24위)보다 낮았다. 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그때까지의 수치스러운 국가적 만행이 그들의 의식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미국인의 역사 자부심은 8위였다.

◆이번 조사는=ISSP는 국가 간 비교 연구를 목적으로 1984년에 설립된 사회조사협력 조직이다. 2004년 현재 한국.미국.영국.일본 등 세계 39개국의 회원단체가 가입해 있다. ISSP는 매년 주제를 정해 회원국 국민을 상대로 조사하고 있는데 2003년엔 국민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2004년엔 시민의식(Citizenship)을 주제로 정했다. 한국인 조사는 ISSP의 한국 회원단체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서베이 리서치센터'(소장 석현호 교수)가 한국종합사회조사(KGSS)의 일환으로 진행했다.

글=전영기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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