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이제는 ‘지구시민권’ 교육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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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경주 재무장관 회의에서 우리의 조정력이 힘을 발휘했다는 소식 이래 G20에 거는 기대가 한층 더 커지게 되었다. 그러나 G20은 환율 조정만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 정상회의에서 설사 여타 주제에 대해 참가국 간 합의를 도출한다 해도, 그것만으로 과연 G20이 지향하는 지구 경제질서 재편이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지구화의 물결은 과거의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그 본질에서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멀리 마젤란의 지구 병탐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작금의 지구화 물결 이전에도 지구촌은 여러 차례 지구화의 충격에 요동친 바 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국제무역과 금융시장의 세계화에 지장을 주는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지구 시장질서를 재편하려는 정치지도자들의 노력이 두드러졌다. 브레턴우즈 협정 체결, GATT 체제 등장, IBRD나 세계은행 설립, 우루과이 라운드와 WTO 체제 도입, IMF 운영 등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국제무역이나 국가 간의 교류가 급신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를 안착시켰다는 비판을 낳았다.

 사실 G20은 이런 미국 중심의 패권질서가 불러온 병폐를 시정 또는 초극하기 위해 지구 금융환경을 새롭게 구축해 보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이런 병폐를 심화시킨 주범 가운데 하나로 치부되는 작금의 지구화 현상은 단순히 국가 간의 교류를 보다 빈번하게 촉진하는 정도를 넘어 국가 간의 경계 자체를 무너뜨리고 있으며, 지구촌 전역에 걸쳐 교류의 속도, 밀도, 강도를 과거에는 상상도 하기 어려운 정도로 격화시키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에 못지않게 시민사회 간의 교류와 연대가 폭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새롭게 조성되는 지구환경 속에서 G20이 과거의 여러 시도와 마찬가지로 지구의 몇몇 나라 대표들이 모여 당면과제를 다루는 경우 지구 엘리트만의 잔치로 끝나지 말라는 법이 없으며, 과연 당면한 지구 차원의 정책과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미 지구 문제는 국가 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지구국가와 지구시민 간의 문제로 치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G20이 지구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서 과연 지구공동체 구성원의 정치적 대표성을 순비례적으로 확보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면 확연히 드러나는 문제다.

 지구 문제 해결과정에 대한 지구시민 참여공간의 부족이나 왜곡만큼 심각한 과제는 지구촌 시민들이 이런 지구화 시대의 격랑을 지켜볼 만한 인식 능력을 갖추었느냐에 있다. 우선 우리 사회만 보더라도 G20 개최국치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수준의 지구화 지수를 지녔다. 외형적으로는 웃자라 세계 9대 무역강국이라거나 한류가 지구촌 전역에 걸쳐 위세를 떨친다지만, 우리의 의식세계는 아직 반도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일국주의의 경계를 넘지 못하는 폐쇄적인 시각으로는 결코 지구화 시대의 과제들에 효과적으로 조응할 수 없으며 나아가 지구화 시대의 경영주체로 성장할 수도 없다.

 G20 개최를 계기로 우리가 지구공동체의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예견해 온 이들에게는 실로 실망스러운 경고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 차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계획을 세우는 국민 없이 정치지도자 몇몇이 G20의 조타석에 앉게 되었다고 해서 지구 중심 국가를 건설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기왕에 G20을 계기로 지구의 중심축에 진입하고자 한다면 남대문 준공 시기를 앞당긴다거나 길거리의 돌멩이 하나라도 남김없이 치워 꽃단장하는 일 따위에 결기를 보일 때가 아니다. 한시라도 빨리 지구적인 인식능력을 지닌 국민을 길러내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지구촌 시대의 명과 암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런 시대의 주역으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깨우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구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무를 쟁취하고 실천하는 성찰적 지구인을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지구화 시대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책 가운데 하나다. 이를 위해 이미 서구 선진국에서는 지구시민권 교육을 학교교육의 핵심과제 가운데 하나로 삼은 지 오래다. 지구시민 의식의 확산 없이 G20이 대성공으로 기록되기는 어렵다.

박재창 숙명여대 교수·정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