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점검] <메인> 경기 불씨는 살아났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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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요즘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주가가 올라가고 결혼.이사철이 겹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소비심리가 녹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3일 재정경제부 발표에 따르면 전국의 유통.음식점 등 소비 관련 55개 업종의 1~2월 카드 사용액은 19조2000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10.3% 늘었다. 본지 기자들이 경제현장을 점검해 본 결과 실제로 이 같은 '훈기'는 백화점이나 증권가, 제조업체 등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재래시장이나 자영업자들에게는 아직 남의 이야기인 듯했다.

#12일 오후 5시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갑자기 닥친 추위에도 매장은 꽤 붐비고 있었다. 구찌.루이뷔통 등 이른바 명품 브랜드가 모여 있는 1층 매장의 한 매니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서너 번씩 물건을 집다 마는 손님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단번에 선뜻 사가는 손님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이들 매장의 매출은 지난해 이맘때보다 10%씩 늘었다. 이 백화점 이영화 점장은 "부유층과 일부 중산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지갑을 여는 분위기"라며 "매기가 확 달아오른 것은 아니지만 불씨는 살아난 것 같다"고 말했다.

#10일 밤 서울 여의도=증권사가 몰려 있는 서울 여의도의 B복집. 10여 개의 방이 있는 이 음식점에는 서너 팀의 손님들이 찾아왔다 발길을 돌렸다. 주인 권모(45)씨는 "지난해 하루 한 건 정도에 그쳤던 회식.접대용 예약이 요즘은 3~4건씩 들어온다"고 말했다. 택시 운전기사 김성대(38)씨는 "자정이 넘으면 썰렁해지던 이 일대 분위기가 살아나면서 일산이나 분당 등 장거리 손님도 하루 한두 명은 태울 수 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2시 서울 구로동 디지털산업단지=첨단 반도체 시설 등에 쓰이는 극세사(極細絲) 생산업체 은성코퍼레이션. 제품 출고장에 높다랗게 쌓여 있는 상자들을 트럭에 싣는 직원들의 손길이 바쁘다. 선적관리팀 최경민(30)씨는 "주문이 늘며 올 들어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고 전했다. 이 공단에는 현재 17개의 아파트형 공장이 건설되고 있으며, 올해 3000여 개의 업체가 추가로 입주할 예정이다.

#그러나…=11일 오후 10시 동대문 시장 안 의류 도매상가 '디자이너 클럽' 앞. 지방 상인들이 몰고 온 봉고와 버스가 줄지어 서 있는 등 겉보기엔 제법 붐비고 있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의류도매상 박모씨는 "금요일 밤이면 한창 '피크'인데 피크가 이 정도라면 평소엔 어떻겠느냐"고 반문했다. 과거에는 사람이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복도가 꽉 찼다는 것이다. 1층 장신구 매장의 주인은 "장사가 하도 안 돼 안 받던 반품도 받기 시작했다"며 "경기가 좋아졌다는 사람을 만나면 한번 따져 묻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좀 더 지켜보자'는 전제를 하면서도 최근의 지표가 일단 긍정적인 신호라는 데에는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중앙일보가 민간.공공 경제연구소 연구원들과 대학 교수 등 경제 전문가 41명을 상대로 '최근의 경기지표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 73%가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지만 지속가능한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답했다. '경기 회복의 강한 신호'라는 응답도 17%나 됐다. 또 응답자의 대부분(80%)은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는 시기를 올 3분기나 4분기로 꼽았다.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정경민.김종윤.허귀식.김원배.김창규.김영훈 기자(이상 경제부), 이현상.박혜민.이철재 기자(이상 산업부), 서미숙 기자(중앙일보조인스랜드), 광주.대전=천창환.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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