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사진가'가 찍은 '가짜 스타' 사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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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 김대중, 주부 박경림, 수영강사 박찬호…. 얼굴은 분명 박경림인데 애가 있는 가정주부라니? 전직 대통령이 사업가로 변신? 박찬호는 언제 또 수영강사로 전직?

▶가수 '패티김'

▶골프선수 '박세리'

▶ 개그우먼 '박경림'

▶ 가수 '나훈아'

▶ '김대중' 전 대통령

누구나 알만한 유명 스타와 생김새가 비슷해 '누구의 닮은꼴'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얼굴은 닮았지만 스타와는 거리가 먼 일상을 사는 사람들, 방송사의 설이나 추석 특집방송에서 이미 몇 번씩은 봤음직한 진짜 같은 가짜 스타. 이들은 요즘 흔히 하는 말로 '짝퉁'들이다. 스타 때문에 울고 웃는 짝퉁 스타 16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사진전이 열렸다. 역시 사진 작가인 구상모(44)씨의 '헬로우 에브리바디' 전(展)-.

구씨는 "가짜 사진가가 찍은 가짜 스타 사진 모음"이라고 이 전시회를 소개했다. 주로 광고사진을 찍어온 구씨 자신도 몇몇 연예인 전문사진가에 익숙한 일반인에겐 '짝퉁'으로 보일지 모른다는 겸손이다.

3년 전 그는 "나도 누군가를 좇고 사는 가짜일지 모른다"는 의심에서 사진전을 기획했다. 스타의 의상. 행동은 물론이고 얼굴을 닮기 위해 성형수술도 마다 않는 시대 분위기에 착안했다.

"유명인이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이 엄청난 요즘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우리는 또 누구의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한다. "헬로우 에브리바디(여러분 안녕하세요)"를 사진전 제목으로 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스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인사말에서 대중과 스타 사이의 가깝고도 먼 거리를 보여준 것.

이 사진전에 '그래, 얼마나 비슷하게 찍었나 한번 보자'고 작정하고 갔다가는 실망할지 모른다. 완벽한 'A급 짝퉁'은 어느 곳에도 없다. 가로 152cm, 세로 208cm 규모의 대형사진에 실물보다 훨씬 거대한 크기로 서 있는 그들에게서 짝퉁의 그늘은 보이지 않는다. 손톱이 뭉개진 평범한 노동자의 얼굴을 한 최용수, 입술이 부르튼 무명 MC 이경규가 자기만의 표정으로 웃고 있을 뿐이다. 사실 처음엔 진짜 스타와 똑같은 복장을 입히고 비슷한 표정을 짓게 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거기엔 재미만 있을 뿐 감동이 없었다. 그들의 삶이 아닌 스타의 꽁무니를 좇는 사진은 또 다른 짝퉁에 지나지 않기에….

그러니 얼마나 닮았나 비교할 생각은 접자. 차라리 진짜와 닮은 듯 다른 듯한 사람들 앞에 서서 '나는 혹시 누구의 짝퉁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향해 줌렌즈를 당겨보는 건 어떨까?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빛갤러리에서 18일까지(02-2077-7052).

박수련 <기자africa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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