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원 들이면 4배 보장" 보상 노린 '날림집' 난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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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공주는 지금…

충남 연기군 남면 송담리
'큰 갈뫼' 마을 어귀엔
11일 10여평짜리 집 한 채를 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철판 사이에 스티로폼을 넣어 만든
샌드위치 패널로
벽체를 만들고 있었다.
건설현장 주변엔
집 짓는 데 필요한 벽돌이나 철근은
보이지 않는다.
주민들은
"축사나 창고에 쓰이는
자재로 1주일 만에 짓는
날림집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겠느냐"면서
"집 주인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외지 사람"이라고 말했다.

▶ (上) 스티로폼 패널로 며칠 만에 집 한 채
(中) 사람은 안 살고 개 두 마리가 "주인"
(下) "이전 반대" 회관 옆에서도 뚝딱뚝딱

행정도시 면적(2210만평)의 57%를 차지하는 연기군 남면에 보상을 노린 날림집이 최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올 들어 행정도시 중심이 될 전월산(260m) 부근에만 10여 채가 지어졌다.

지난해 10월 21일 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이 난 뒤 날림집 신축이 시들해졌으나 올해 초 '후속대책'(행정수도 대안) 논의가 활발해지자 다시 '보상용 주택'이 등장한 것이다. 농가주택은 국도에서 50m 이상 떨어지고 연면적 60평 이하일 경우 건축 허가.신고 대상이 아니어서 손쉽게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보상 노린 날림집=연기군 남면 진의.양화리에는 겉모양이 똑같은 '쌍둥이 집'이 10여 채 들어서 있다. 위헌 결정 이전에 지어진 집으로 몇 개월 사이 마당에 나무 500여 그루가 빼곡히 심어져 있다. 사람 사는 흔적은 없고 자물쇠로 굳게 잠겨진 철조망 대문 사이로 개 두 마리만 보였다. 이웃 주민은 "저 집은 사람이 없어도 날이 어두워지면 자동으로 형광등이 켜지고 오후 11시가 넘으면 꺼져 '유령집'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종촌리 연양초교 맞은편에는 숯불찜질방을 신축 중이다. 이달 말 문을 열 예정으로 식당 등이 들어설 2층짜리 부속건물은 이미 완공된 상태다. 1년여 후면 철거해야 하는데 수억원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는 보상용 날림집은 대부분 외지인이 지었는데 요즘은 현지 주민들까지 이에 가세하고 있다. 진의리 마을회관 바로 옆에 신축 중인 농가주택 주인인 80세 노인은 "서울 사는 아들이 남은 인생을 편히 살라며 집을 지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웃 주민들은 "아들이 보상금을 노리고 짓는 게 뻔하다"며 혀를 찼다. 진의리 임헌인(63)씨는 "외지에서 몰려와 짓는 저런 날림집들 때문에 속이 탄다"면서 "곧 고향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이 태산인데 한편에선 보상금만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형질 변경을 통해 짓기도=지난 1월 말 서울 등 외지에 사는 두 명이 관리지역(옛 준농림지역)인 남면 종촌리에서 일반주택을 짓기 위해 형질변경 허가를 나란히 받았다. 위헌 결정으로 개발행위 제한이 풀리자 재빨리 토지 용도를 바꾼 것이다. 지목이 밭.임야에서 대지로 바뀌면 보상가는 두 배 이상 뛰기 때문이다.

◆보상 어떻게 받나=택지개발지구 등 대단위 공공개발사업 예정지역 내 건물은 이주에 따른 건물 보상비와 이사비를 받는다. 건물은 구조.사용자재.이용현황.준공시기 등에 따라 보상금을 결정된다.

또 지하수 관정.정화조 등 모든 부속 시설물도 보상에 포함된다. 수목은 수종.수령, 그리고 묘목 판매용.조경용 여부를 따져 보상한다. 관심이 가장 큰 이주자 택지(일명 딱지) 보상은 수도권의 경우 택지개발예정지구 주민공람 공고일을 기준으로 최소 1년 전부터 살아온 사람들이 대상이다. 보통 이주자 택지는 택지 조성원가의 80~85%로 저렴한 값에 공급된다.

연기지역 중개업자들은 "1000만원을 들여 날림집을 지어놓고 나중에 딱지도 받고 건물 보상금과 이사비까지 받으면 5000만원가량 된다"며 "이를 노리고 외지인들이 몰려와 건물을 신축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한국토지공사는 지난 10일 '행정중심 복합도시 준비단'을 발족하고 보상 관련 기본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예정지 지정 후 예상되는 불법 건축물 건축과 무단 형질변경 등에 대비해 항공사진 측량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이런 절차가 끝나면 11월께부터 보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신행정수도후속대책기획단 관계자는 "아직 보상과 관련해 관계기관 협의가 없는 상태라 구체적 보상기준을 밝힐 수 없다"면서 "예정지에 신축한 건물은 위장 전입 등 투기성 여부를 엄격히 확인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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