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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선수에게 “부인 잘 있나” … 프로도 말 펀치 날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타이거 우즈와 필 미켈슨이 맞대결할 때는 두 선수 모두 자신만의 게임에 집중하는 듯하다. 그러나 두 선수의 침묵 속에는 팽팽한 ‘마인드 게임’이 숨어 있다.

골프는 젠틀맨의 게임이라지만 항상 신사적인 것은 아니다. 반드시 이겨야 할 때가 있다. 그래서 서양 골프엔 ‘gamesmanship’이라는 단어가 있다. 잘만 사용하면 일관성이 없는 골프 스윙을 가지고도 일관성 있게 이길 수 있는 묘약이라고 한다. 웹스터 사전은 게임스맨십을 ‘룰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상대의 주의를 흩뜨리는 등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는 말과 행동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예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에서 쓰이는 ‘구찌’라는 은어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게임스맨십은 말뿐 아니라 여러 가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상대를 괴롭힌다.

스포츠맨십에는 어긋날 수도 있다. 그러나 경기의 일부이기도 하다. 야구에서 부정 방망이를 쓰는 것은 룰 위반이지만 배터 박스에 들락날락하는 것은 게임스맨십이다. 상황에 따라 경기를 더욱 재미있게 하는 양념이 될 수 있다.

게임스맨십이라는 말은 1968년 영국인 스티븐 포터가 만든 조어다. 스포츠 전체에 쓰이는 말이지만 골프에서 가장 효과가 크다. 그래서 그는 게임스맨십을 골프맨십이라고 이름 붙이려 하기도 했다. 포터는 골프가 게임스맨십에 가장 잘 맞는 이유 두 가지를 들었다. “골프는 멈춰 서 있는 공을 치는 스포츠다. 움직임이 덜할수록 멘털이 중요해진다. 또 골프는 상대와 바짝 붙어 있기 때문에 말과 행동이 잘 먹힌다. 상대가 멀리 떨어져 있는 테니스 같은 스포츠에서 게임스맨십이 잘 통하지 않는다.” 몸을 부딪치는 농구나 축구에서 트래시 토크(trash talk)가 있지만 말 그대로 욕이다. 다리를 걸거나 옷을 잡아당기는 파울 수준이어서 게임스맨십에 넣지는 않는다.

게임스맨십이 주말 골퍼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골프에서도 게임스맨십은 일어난다. 그레그 노먼은 홈페이지에 “프로선수 누구나 다 한다”면서 자신이 쓰던 게임스맨십 전략을 공개했다. 이런 것들이다. “당연히 드라이버를 잡아야 할 아주 긴 홀에서 내가 티샷을 두 번째로 할 땐 1번 아이언을 보란 듯 꺼내 든다. 상대는 ‘듣던 것보다 노먼이 훨씬 더 장타자네’라고 생각해 드라이버를 힘껏 치다 실수가 발생할 수 있다. 내 순서가 되면 아이언을 집어넣고 드라이버로 친다. 반대로 페어웨이가 매우 좁은 홀에선 드라이버를 꺼내 들고 웨글을 하고 있으면 먼저 치는 사람은 나를 의식해 드라이버로 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난 아이언으로 친다.”

노먼에 의하면 파 3 홀에서 게임스맨십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 “메이저 챔피언과 라운드 도중 상대가 나의 클럽을 계속 훔쳐보더라. 7번과 8번 클럽 중간 정도의 파 3홀이었는데 7번을 꺼내 들고 힘차게 보이지만 실제론 살살 스윙했다. 상대는 7번 아이언을 세게 쳐 그린을 넘기고 말았다.” 노먼은 게임스맨십에 당한 일이 더 많다. 1986년 US오픈에서 동반자인 리 트레비노가 퍼트를 지나가게 쳐 놓고 캐디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그린’이라고 투덜거리는 것을 듣고 살살 쳤다가 보기를 한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역전패했다.

짓궂은 장난을 즐긴 리 트레비노는 잭 니클라우스와의 1971년 US오픈 경기 도중 가짜 뱀을 던져 니클라우스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타이거 우즈도 자신의 레슨서인 나는 어떻게 골프를 하나: HOW I Play Golf에서 게임스맨십에 관해 언급했다. “당신이 상대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를 무너뜨릴 수 있다면 매치를 끝내는 데 유리하다. 나는 마인드 게임을 좋아하며 그것은 골프라는 게임의 일부”라고 썼다. 그리고 매치 플레이에서 쓰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했다. 평범한 내용들이었다. 드라이브샷을 신경 써서 잘 치고 잘못 친 것처럼 보이게 하라 등 보기 플레이어급 내용이다. 그러나 실제론 그는 매우 고급 게임스맨십을 쓰고 있다. 부치 하먼은 라이벌인 필 미켈슨과 마지막 라운드 같은 조에서 우승 경쟁을 하던 우즈의 게임스맨십을 분석한 적이 있다. 그는 우즈의 코치를 하다가 갈라섰으며 현재는 필 미켈슨의 코치를 맡고 있다. 두 선수의 심리와 습관을 잘 알고 있다.

하먼은 우즈가 짧은 거리에서 가능하면 상대보다 먼저 퍼트를 해 홀아웃한다고 했다. 우즈가 홀아웃하면 그를 따르는 갤러리가 대거 자리를 움직여 남은 선수는 소란 속에서 퍼트를 해야 한다. 하먼은 또 우즈가 티잉 그라운드엔 되도록 상대보다 늦게 도착한다고 했다. 기다리던 갤러리가 우즈에 대해 박수를 치면 상대가 위축된다. 박수가 티샷 직전까지 이어지게 해 경기흐름을 가져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우즈는 느린 플레이어와 경기할 때는 빨리 걷고 빠른 플레이어와 할 때는 일부러 천천히 걷는다고 하먼은 지적했다. 상대가 자신의 리듬대로 편하게 경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하먼은 우즈가 가끔씩 드라이버를 쳐야 할 홀에서 일부러 3번 우드를 친다고 했다. 상대는 왜 우즈가 3번 우드를 쳐야 했을지 잠시 고민하게 되는데 그러다 자신의 템포를 잃게 된다.

게임스맨십의 목적은 자신의 집중력을 강화하고 상대의 집중력을 분산시켜 게임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게임스맨십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971년 US오픈 연장에서 리 트레비노는 가방에서 장난감 고무 뱀을 꺼내 상대인 잭 니클라우스에게 던졌다. 니클라우스는 웃어넘겼지만 게임에서 졌다. 니클라우스는 “처음엔 그냥 장난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난 후 트레비노가 뱀을 왜 가져왔을까라는 의문이 남게 됐다”고 했다.

아마추어의 라운드에서도 의도가 눈에 보이는 “저기 오른쪽 큰 벙커 꼭 조심해야 돼”라는 말 등은 멱살잡이를 일으킬 수도 있는 저급한 전략이다. “저기 나비가 자꾸 성가시게 구는데 내가 나비를 잡아버릴까”라는 정도가 좀 더 고급이다. 상대는 스윙이 아니라 나비에 신경 쓰게 된다.

라운드 중 레슨을 해 주는 것도 고도의 게임스맨십이다. 그러나 그냥 레슨을 하는 것은 속이 보인다. 레슨이 필요할 정도로 약한 상대에게 굳이 게임스맨십을 쓸 필요도 없다. 상대가 드라이버를 매우 잘 치고 있을 때 “아! 이제 알았다. 임팩트 때 왼팔을 쫙 펴는 게 스윙의 비밀이지요? 내가 배우려 하는데 스윙할 때 앞에서 그걸 좀 봐도 될까요”라고 묻는 것이 고차원적이다.

은근히 상대의 속을 긁는 전략도 효과가 크다. 정치적, 종교적 문제에 대해 토론하면 사람들은 의외로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라이더컵에서 세베 바에스트로스는 시끄럽게 이혼해 상처를 받은 상대 선수에게 그걸 전혀 모르는 척 “부인은 잘 있느냐”고 물어 자극시켜 이긴 일이 있다. 국내 투어에서도 상대를 견제하는 일은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아직 단순한 수준이다. 한 여자 선수는 “옷 색깔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눈앞에 어른거리지 말라”는 고참의 질책에 뒤로 물러나다 벙커에 거꾸로 빠진 일도 있다.

수비가 가장 좋은 공격이다. 잭 니클라우스는 마지막 홀에서 3타 앞서던 짐 소피를 이렇게 공격한 적이 있다. “3타를 앞선 채 세계 최고의 골퍼와 마지막 페어웨이를 걷는 기분이 어떠냐?” 소피는 “세계 최고의 골퍼도 절대 못 이기는 상황이라고 포기하겠구나 여기겠지”라고 답했다. 그가 옳았다. 이에는 이로 대항할 필요도 있다. 루키 시절 벤 호건은 고참 선수가 퍼팅라인에 자주 서 있자 “이 퍼터를 봐라. 한 번 더 당신이 퍼팅라인 앞에 있으면 이 퍼터가 당신 눈 사이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의도적이지 않은 게임스맨십에 당할 수도 있다. 샘 스니드는 벤 호건과 함께 경기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스윙 템포가 너무 빨라 절대 스윙을 보지 않았다. 장타를 치는 상대 선수도 신경 쓰면 안 된다. 그냥 그러려니 생각해야 한다.

게임스맨십의 공격에 가장 좋은 수비는 자신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는 것이다. 자신을 질책하지 말아야 한다. 발끈하는 것은 자신의 게임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자신감을 준다. 화 낼 상황에서 안정을 유지하는 것은 상대의 평정을 깨뜨린다.

성호준 기자 kar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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