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논쟁리뷰] 자유시장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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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부키, 368쪽, 1만4800원

장하준(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47)의 저술은 논쟁적이다. 국내에 처음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사다리 걷어차기』(2004)이래 그의 펜 끝은 자유시장주의를 겨냥해 왔다.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선 펜 끝이 더 날카로워졌다. 중앙일보는 이 책이 영국에서 나온 직후 현지 인터뷰(중앙일보 9월 25일 22면)를 통해 저자의 육성을 발빠르게 전한 바 있다. 이번에 국내 출간을 계기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좀 더 입체적으로 그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그의 책에 대한 지지와 비판이 엇갈리는 ‘논쟁 리뷰’를 준비했다. 자유기업원 김정호 원장이 비판적 리뷰를, 광주과학기술원 장진호 교수가 지지하는 리뷰를 보내왔다.

좌파·우파 얽매이지 않는 통찰력
자유시장 신화 조목조목 깨트리기

장진호 광주과학기술원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선진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부자 감세, 미소금융 등을 비판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 가장 우려 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으로 가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키 제공]

장하준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자유시장주의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한다. 서문과 결론에서 그 점을 분명히 했다.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해서 전세계로 확산된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저자가 볼 때 자유시장은 ‘고삐풀린 자본주의’다. 그는 이번 책에서 보다 단호한 어조로 “자유시장은 없다”고 말한다. 그가 볼 때 자유시장은 정치적으로 규정된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라며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했다. 그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지향한다.

 책은 “세계 경제는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의 상황을 가리킨다. 세계적 경제 위기의 원인을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로 지목하는 것이다. 장 교수는 현재의 세계 경제 시스템을 적당히 보수해서는 안되고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는 사회주의자인가. 그건 아니다. 자본주의가 최선의 경제 시스템임을 책 곳곳에서 인정하고 있고, 이윤 동기라든기 시장 메커니즘의 효율성도 모두 긍정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발전 시스템을 긍정하는 대목도 그렇다. 이런 점이 그의 장점이다. 기존의 좌파, 우파 이념에 교조적으로 얽매이지 않는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경제가 발전하는 현실을 꿰뚫어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볼 때 자유시장주의는 수 많은 자본주의 이론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기업은 소유주만을 위해 경영되면 안되고, 잘 사는 나라 사람들의 임금이 그들이 하는 일에 비해 못사는 나라 동일 업종의 사람들보다 50배나 더 많은 이유를 국가간 시스템의 차이에서 찾으며,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는 주장 등 흥미롭게 읽을만한 대목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는 인간관, 즉 이기적 인간관과 합리적 효율을 추구하는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와 정치를 분리시켜 보는 이분법적 사고, 부자 감세를 합리화하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론, 저개발국의 빈곤을 기업가정신 부재 탓으로 돌리는 문화적 숙명론 등도 비판 대상이다.

 현대 금융시장이 지나치게 효율만을 추구하다 결국 파국을 초래한 현실을 반성하게 하고, 경제전반에 대한 불안정을 줄여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좋은 지침이 된다. “좋은 경제운용에 꼭 좋은 경제학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는 주장은 다소 파격적이지만 그만큼 세계 경제의 현실이 엄중하다는 위기의식의 반영으로 볼 수 있겠다.

 이번 신간은 전작인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과 궤를 같이한다. 다채로운 역사적 사례와 비유·우화들이 동원됐다. 저자의 박식함, 위트와 유머가 시장만능주의를 비판하는 결론을 잘 뒷받침한다. 경제학자가 아닌 ‘문장가 장하준’의 면모를 발견하기도 한다.



중국 성장은 규제와 국영기업 덕 ?
문제 꺼낸 뒤 구체 처방엔 인색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장하준 교수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도 이전의 저술과 마찬가지로 자유시장경제학을 비판하고 있다. 장 교수는 자유 시장은 없다고 단언했다. 시장주의자도 적절한 제도와 규칙 없이는 시장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재산권의 보호가 그런 것이다. 장 교수는 그런 제도가 가진 자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눈 앞의 현상만을 고려한 생각이다. 길게 보면 재산권 제도는 모두의 생활수준을 올려 놓는다. 남한 사람이 웬만큼 잘사는 북한 사람보다 잘사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책에서 장 교수는 “자유시장 정책으로 부자가 된 나라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보호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으로 충분히 오해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장 교수도 주목하고 있는 중국을 예로 들어보자. 중국 경제가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 즉 자유화를 시작하면서부터다. 물론 그들의 자유는 완전한 수준과는 거리가 멀다. 중국의 기업은 여전히 국영이고 사업을 시작하려면 수많은 규제를 받아야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을 통해 주어진 그 작은 자유가 그들에게 어마어마한 성장을 가져다주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장 교수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중국의 성장은 규제와 국영기업 덕분인 것으로 비쳐진다. 철저한 규제와 국유화의 시기였던 마오쩌둥(毛澤東) 시절에 왜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는가를 상기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이번 신간을 보면서 조금 의아했다. 자유시장주의를 비판하기위해 든 사례들 가운데 공감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잘사는 나라에서는 하는 일에 비해서 임금을 많이 받는다” “아프리카의 저개발은 숙명이 아니다” “교육을 더 시킨다고 나라가 더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와 같은 내용이 그렇다. 이런 것은 자유주의 경제학도 같은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 교수는 스웨덴 버스 운전기사와 인도 버스 기사의 임금을 비교하면서 둘이 비슷한 일을 하는 데도 스웨덴 버스기사의 임금이 50배나 높은 것을 문제시한다. 장 교수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스웨덴의 버스 운전 시장이 닫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을 ‘말하던’ 안하던 경제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결국 이 대목에서 장 교수와 나의 견해가 엇갈리는 것은 정책 처방일 듯싶다. 바로 앞에 든 예에서 스웨덴과 인도의 버스 운전사 임금 격차 문제를 해소하기위해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권하는 것은 개방이다. 가난한 인도 기사에게도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동시에 정당성 없이 높은 임금을 받는 스웨덴 기사들의 문제도 교정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한 장 교수의 처방은 무엇일지 궁금하다. 장 교수는 문제제기를 하고나서 구체적인 처방을 내놓는데는 다소 인색한 것 같다. 평소의 주장에 비추어 보면 개방은 아닐 것 같은데, 그렇다면 계속 노동시장을 보호해서 같은 노동에 대한 나라간 임금 격차를 그대로 방치하자는 이야기일까. 또 보호를 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로 언제까지 해야 한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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