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한명, 오후에 한명… 추가되는 경제부총리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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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빈 자리를 메우기 위한 청와대의 인선 작업이 희한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당초 열린우리당의 강봉균 의원과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의 2파전이 10일 하루 사이에 4파전 양상으로 늘어난 것이다. 오전엔 신명호 전 아시아개발은행 부총재가, 저녁 들어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 또 추가됐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급부상한 한 실장의 기용 가능성이 크며 윤 위원장이 경합 중인 상황"이라고 전했다.

사연은 이렇다. 강 의원은 이미 재경부 장관을 거쳐 조직 장악력에 문제가 없고 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으로 기존의 정책 기조도 꿰고 있어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강 의원 아들의 병역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1993년 보충역 판정을 받은 뒤 미국 유학을 떠난 31세의 아들이 아직 병역을 마치지 않은 상황이다.

더욱 주요한 요인으로는 당정이 분리된 상황에서 국회 예결위원장까지 맡고 있는 강 의원이 국회와 당내에서 시장주의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여권에서 적극 개진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탄핵 직후 '김혁규 총리-이해찬 원내대표-강봉균 정책위의장'의 카드로 실용노선을 추진하려 했으나 무산됐던 적도 있다. 여당 원내대표 경선에서 강 의원이 이해찬 현 총리와 함께 러닝메이트로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신 때문이다.

윤증현 위원장은 재무부에서 성장한 금융통으로 적극적 추진력을 가진 인사다. 청와대 관계자는 "복수의 주택이 지적됐지만 재산상 큰 문제점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환란 당시 재정경제원 금융정책실장을 지냈지만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이라고 한다.

윤 위원장은 금감위원장을 맡은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집권 후반기를 위해 비축해 둬야 할 자산"이라는 건의가 노 대통령에게 올라갔다고 한다. 특히 지금 금감위에 그가 해결해야 할 일이 많이 있어 교체할 수 없다는 내부 검토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노 대통령과 '꼬마 민주당'을 함께하며 친했던 이수인 전 의원의 매제다.

이런저런 이유에 따라 후보군의 확장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한덕수 실장의 추가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그는 행시 출신으로는 드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다. 소신있는 개방형 통상론자로 특히 대외적으로 신뢰감을 주었던 '이헌재 효과'를 계속 받쳐줄 카드라는 게 청와대 측의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DJ 정부 말기인 2002년 7월 청와대 경제수석을 하던 그가 통상교섭본부장 때의 '한.중 마늘파동'을 책임지고 물러났지만 당시 소신있게 책임지는 자세가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검증이 이미 끝난 데다 국무조정실장으로 이해찬 총리와 호흡을 맞춰 온 점도 감안됐다는 전언이다.

신 전 부총재는 이헌재 전 부총리와 행시 6회 동기로 재경원 2차관보와 주택은행장을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을 맡고 있다. 신선호 전 율산그룹 회장의 친형으로 이 정부의 각료 후보 파일에 들어 있었다고 한다.

김완기 청와대 인사수석은 "당초 강봉균 의원과 윤증현 위원장을 놓고 검토했으나 검증 상 다소의 문제점이 생긴 데다 또 다른 비교우위를 가진 분들을 대상으로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돼 신명호 전 부총재와 한덕수 실장을 추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은 또 "4명에 대한 충분한 검토 작업을 진행한 뒤 다음주 초께나 최종 결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2~4명의 후보군을 이렇듯 차례로 신문 지상에 띄워 여론 검증을 받게 하는 청와대의 방식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론 검증 과정에서 탈락자들까지 상처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특정 집단이 자신의 이해관계와 배치되는 인사를 표적으로 집중 공세를 펼치거나 반대 측의 조직적인 음해 공세도 가능하다.

이헌재 부총리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현 정부가 추후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희석용'으로 무리한 방법을 택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과거처럼 국정원의 은밀한 사찰이나 정밀한 계좌추적 등이 불가능한 터라 다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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