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여야 '입맛대로'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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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기 국회의장과 여야 의원들이 9일 낮 워싱턴 인근 한국식당에서 특파원들과 만났다. 5박6일에 걸친 방미 외교의 성과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김 의장은 "한.미 정치인들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심탄회한 대화'는 어느 정도 이뤄진 듯하다. 미국 측이 적당히 돌려서 얘기하던 과거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민주당 톰 랜토스 의원은 "한국민들이 북한보다 미국을 더 한국에 위협적인 나라로 생각한다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미국도 변해야 하지만 한국과 중국이 북한을 무조건 싸고도는 게 문제가 아니냐"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같은 당 마이클 카푸아노 의원도 "도대체 언제까지 북한의 벼랑 끝 외교에 끌려다녀야 하느냐"면서 의문을 제기했다.

백악관.국무부.국방부 등 미 행정부 실무 인사들과의 오찬 자리에서는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보장이 대체 뭐냐. 부시 대통령이 여러 차례 공격 의사가 없음을 공언하지 않았느냐"라면서 냉소적인 반응이 적지 않았다고 한국 측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그동안 미국의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북 시각이 달랐는데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에는 민주당 의원들조차 상당히 강경한 대북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미 의회가 북한에 대한 대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도 "북한의 2.10 선언 이후 미 민주당도 북한을 보는 눈이 냉엄해지고 있으며, 한.미.일 공조를 유지해야 하는 정부의 부담이 더 무거워질 것 같다"고 동감을 표시했다.

반면에 여당인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은 "북한의 2.10 선언으로 인한 미국의 대북 정책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 행정부 고위 실무자들은 (북한의 선언이) 협상전략 차원일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면서 전혀 다른 설명을 했다.

똑같은 미국 인사들을 만나 똑같은 말을 듣고도 여야의 해석은 이처럼 딴판이다. 그러니 의원들이 한국에 돌아가면 또 얼마나 이번 방미에 대해 아전인수격인 해석이 난무하게 될지 걱정이 된다.

김종혁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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