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로 개인 땅 사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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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경남 소재 모 대학의 H교수는 신기술 개발 등 10개 과제를 연구하면서 석.박사 등 연구 보조원 26명의 통장에 인건비 명목으로 입금된 4억2300만원을 자신의 통장으로 이체토록 했다. 그는 이 중 3억1000만원만 인건비로 지급하고는 1억1300만원을 챙겼다. H교수는 이 중 1800만원을 빼내 자신의 땅을 사는 데 보태기도 했다.

이 같은 사실은 감사원이 지난해 5 ~ 10월에 실시한 '대학재정 지원사업 집행실태' 감사에서 드러났다.

10일 감사원에 따르면 전국 16개 대학을 대상으로 연구비 360억원의 집행실태를 조사한 결과 7개 대학 19명의 교수가 이 같은 수법으로 5억1700만원을 모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거래업체로부터 재료를 구입한 것처럼 허위로 영수증을 발급받은 뒤 대학본부에 재료비를 청구해 받아내는 수법도 사용됐다. 연구비 전용카드를 이용해 허위로 재료비를 결제한 뒤 업체로부터 다시 돈을 돌려받는 카드깡을 하기도 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인건비와 재료비를 통해 조성한 자금 7억6000여만원 중 3억4000만원을 교수들이 생활비 등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며 "심지어는 자녀 결혼비용으로 쓴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기업과 짜고 연구용역비를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 기업의 탈세를 도운 경우도 있었다. 광주 모 대학의 J교수는 2001년 모 기업으로부터 "연구비 투자가 적어 입찰에서 불리하고 세금부담도 크니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이 기업과 7억원 규모의 연구용역을 계약했다. 기업은 대학에 7억원을 입금했고 대학 측은 다시 연구용역비 조로 J교수에게 6억9000여만원을 지급했다. 그는 이 돈을 인출해서 기업에 돌려주었다. 나중에 이 교수는 형식적인 보고서를 기업에 제출한 뒤 50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 기업은 대학 측에서 받은 7억원짜리 영수증을 세무서에 제출, 정당한 연구경비로 인정받아 2억9000만원가량의 소득세와 법인세를 감면받았다.

감사원은 연구비와 관련해 비리를 저지른 교수 23명을 적발해 17명은 중징계, 6명은 경징계를 요구했다.

감사원은 또 교육부에서 추진해온 국립대학발전계획 추진평가사업, 지방대 육성사업 등이 ▶지원 대상 선정 기준 미흡▶사후평가시스템 부실▶지원목적 외 사용 등으로 인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밝혔다.

이들 사업을 통해 전국의 200개 4년제 대학에만 매년 3000억 ~ 4000억원이 지원되고 있다.

경북의 한 대학은 2002년 세라믹기술교육센터 설립 목적으로 정부에서 8억원을 지원받았으나 2003년 이후 해당과의 신입생이 1명에 불과해 센터를 단순 강의실로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감사원 측은 "2002년 당시에도 해당과의 충원율이 47%에 불과한 상황에서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것 자체가 불합리했다"고 지적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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