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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 빠를수록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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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복지 선진국 유럽은 지금 그들의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힘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유럽 경제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잡고 있는 독일과 프랑스가 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어젠다 2010'에, 그리고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어젠다 2006'에 개혁 청사진을 담고 고비용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그들의 정치적 생명을 담보로 개혁의 기치를 높이고 있다. 이는 근본적으로 복지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국가적 노력이며 연금개혁은 분명 이 '개혁 어젠다'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 개혁 어젠다에 대한 사회적 저항과 반발이 거셌던 것도 사실이지만, 성공적인 개혁을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던 이들의 모습은 우리의 현실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게 한다.

연금개혁이라는 국가적 과제는 그 어디에서도 쉽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를 둘러싼 진통은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우리의 국민연금제도가 현행대로 유지될 경우 2047년에는 기금이 완전 고갈된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고, 국민연금의 '재정건전성 확보'와 '소득보장의 적절성'을 담보하기 위해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15.9%로 상향 조정하고 급여수준은 2008년부터 생애 평균소득의 50%로 하향 조정한다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하지만 이 개혁법안은 지금껏 충분히 심의가 이뤄지지 못하였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확대됐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국민연금의 탄생과 관련한 정치적 논리는 논외로 한다 해도 사회보험으로서 국민연금제도 자체에 대한 무지와 오해가 불신의 질곡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이 신뢰의 위기는 기금운용과 관련한 도덕적 해이에 대한 불신이자 이에 따른 연금급여에 대한 불확실성의 문제이며 궁극적으로 적정수준의 노후보장에 대한 회의로 귀결된다. 만일 이러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사실에 근거한다면, 국민연금을 통한 소득재분배는 네거티브 섬 게임의 속성을 갖는다. 하지만 그 전제가 사실과 다르다면 우리는 이제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실제는 어떠한가? 지난해 말까지 누적된 국민연금은 연평균 누적수익률 8.17%를 기록하며 약 44조원의 막대한 운용수익금을 축적하고 있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재정안정을 위해 5년마다 재정계산제도를 도입해 장기적인 기금안정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하며, 국민연금의 지급불능 또한 우려의 대상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이 우리 모두에게 만족할 만한 수준에서 노후를 보장해 준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중장기적으로 현 연금제도가 갖고 있는 저부담.고급여의 기형적 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도 자체의 존립도 어려운 상황에서 최소한의 노후보장을 지향하는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을 통한 노후 소득보장의 적절성은 어느 정도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제도가 왜 개선돼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국민연금이 개인적 차원에서 노후보장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전 사회적 차원에서 분배정의에 기초한 소득재분배를 통한 사회통합을 가능하게 한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만일 이 점에 동의한다면, 바로 그 때문에 연금개혁의 주체인 정부와 정치권은 포퓰리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조속한 제도개선을 통해 진정으로 국민에게 동의를 구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힘겹지만 지속적인 노력을 계속해야만 할 것이다.

최낙관 서남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