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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칼럼] 대중국 외교와 나라의 품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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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국가의 품격(國家の品格)』은 최근 300만 부의 판매고를 기록한 후지와라 마사히코(藤原正彦)의 책 제목이다. 일본에선 요즘 ‘품격’이란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현 상황에서 일본의 품격이 논란이 되는 건 놀랄 일도 아니다.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에서 국격을 지키느냐 숙이고 들어가느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이는 지난달 일본 해상보안청이 일본 영해인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부근에서 일본 순시선과 충돌한 중국 어선을 나포했을 때 명확해졌다. 예전(자민당 집권기) 일본 정부는 이 섬의 영유권에 대한 중국의 도발에 무시로 일관했다. 그러나 지난해 친중국 성향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정부가 들어서며 상황은 변했다. 하토야마는 센카쿠가 위치한 동중국해를 중국의 뜻대로 ‘우애의 바다’로 선언할 만큼 순진했고 오키나와 미 공군기지의 이전을 지지해 동맹인 미국의 반감을 샀다.

  외교적 현실주의는 하토야마 실각 후에도 복원되지 않았다. 후임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일본이 처한 역사·지리적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일본 정부는 인간 고통을 최소화하는 사회를 이룩하도록 하겠다”며 국가 안보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품격을 유지하며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중국은 태평양 해상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욕망을 더 이상 숨기지도 않는다.

 중국은 센카쿠 사태를 간 정부의 의지를 떠보는 기회로 삼는 듯하다. 일본이 중국 어선 선장의 석방을 거부한 보복으로 중국은 자국 대사의 소환과 장관급 회담 중단, 중국인 관광객 1만 명의 일본 여행 취소 등을 거론했다. 급기야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할 가능성을 거론했고 비공식적으론 이미 조치가 내려진 듯하다. 간 정부는 꼼짝없이 선장을 풀어줬고 선장을 체포한 지방 검사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물러터진 외교에 국민들은 질렸고 총리 지지율은 급락했다. 희토류의 사실상 금수 조치는 공급의 97%를 중국에 의존하는 일본 회사들에 큰 타격이다. 친환경 자동차의 엔진 부품 등 희토류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희토류는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매장돼 있지만 중국이 전 세계 생산량의 90%(약 12만t)를 점하고 있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희토류는 방사능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많은 나라가 개발을 주저하고 있지만 중국은 저가의 풍부한 노동력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방사능의 악영향을 별로 개의치 않는다.

  센카쿠 사태 이전에도 중국은 희토류 시장을 통제하려 했다. 통제가 중국의 저가 정책과 결합되면 독점의 길로 빠질 수 있다. 일본에 대한 희토류 통제는 독점의 효과를 시험해 보려는 시도로 보인다. 중국의 희토류 무기화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첨단 기술을 가진 외국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세우도록 해 자국 기업들이 기술을 흡수하려는 것이다. 한 중국 기업의 중역은 “희토류 수입이 막히면 일본 회사들은 중국에 공장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같은 협박으로부터 일본의 품격을 지킬 수 있는 대응책이 있다고 해도 간 정부가 그걸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고이케 유리코 전 일본 방위상
정리=이충형 기자 ⓒProject Syndic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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