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카페] 첫 정규앨범 낸 듀오 ‘가을방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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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실력파 인디 뮤지션 정바비(오른쪽)와 계피가 만나 ‘가을방학’이란 세련된 음악을 빚어냈다. 바비가 지은 팝 멜로디에 올라탄 계피의 맑은 음색이 인상적이다. [루오바팩토리 제공]

두 남녀는 서로를 존대했다. 네 살 많은 서른하나 정바비는 “계피씨”라고 했고, 네 살 어린 스물일곱 계피도 “바비씨”라고 불렀다. ‘가을방학’이란 팀을 꾸리고, 1년 가까이 함께 음악 작업을 했으면서도 둘은 쑥스런 거리감을 애써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음악이 아니라면 둘을 묶어줄 어떤 사적 인연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방학’의 맨 처음을 증언해본다. 이태 전 이맘때다. 가을철 음악축제인 그랜드민트페스티벌(GMF) 현장에서 바비와 계피가 우연히 마주쳤다. 둘은 서로의 음악적 재능을 심상찮게 바라보고 있었을 뿐, 인사 몇 번 건넨 적 없는 데면데면한 사이었다. 당시 바비는 모던록 밴드 ‘줄리아 하트’를 이끌고 있었고, 계피는 ‘브로콜리너마저’란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었다.

 “공연 잘 봤어요. 언제 한 번 같이 음악 해도 좋을 것 같아요.”(바비) “정말요? 나중에 백보컬로라도 써주세요.”(계피)

 그렇게 스치듯 지나쳤는데, 그 짧은 순간이 훗날 둘의 새로운 음악적 항로를 결정짓게 됐다. 지난해 가을 둘은 작심하고 다시 만났다. 잠시 밴드 활동을 쉬고 있던 바비는 세련된 팝 음악을 잔뜩 만들어놨고, ‘브로콜리너마저’에서 몸을 뺀 계피도 새로운 무대를 찾고 있었다.

 음악을 고리 삼아 마주 앉은 두 사람은 ‘가을방학’이란 노래를 단숨에 녹음했다. 그 첫날의 기억이 하도 강렬해서 아예 ‘가을방학’이란 이름으로 팀을 꾸리기로 했다. 그리고 꼬박 1년 뒤, 모두 12곡이 수록된 정규 1집 앨범 ‘가을방학’이 발매됐다. 바비가 작사·작곡을 도맡았고, 계피가 모든 노래를 불렀다.

 “‘브로콜리너마저’를 떠난 다음 다른 작곡가와 본격적으로 작업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예전엔 제 목소리가 그늘이 많이 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바비씨의 곡이 밝은 편이라 보컬도 밝게 나오더라고요.”(계피)

 계피의 말마따나 ‘언니네이발관’ ‘줄리아 하트’ 등에서 농도 짙은 모던 록 을 주로 풀어냈던 바비는 이번 음반에서 개성 또렷한 멜로디와 가사로 세련된 팝 음악을 빚어냈다. 특히 잔잔한 서사를 품고 있는 그의 노랫말은 음악이 문학의 가슴 떨림을 훔쳐올 수 있음을 입증한다. 이를테면 이상의 단편소설 ‘봉별기’를 인용한 노래 ‘속아도 꿈결’의 다음 같은 가사. ‘산책길을 떠남에 으뜸 가는 순간은/멋진 책을 읽다 맨 끝장을 덮는 그 때….’

 “가사의 내러티브도 중요하지만 멜로디의 내러티브 또한 간과해선 안 돼요. 가사의 이야기가 흘러가듯 멜로디에도 어떤 서사의 흐름이란 게 있거든요. 노랫말과 멜로디의 내러티브가 조화를 이루는 게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바비)

 둘은 일단 일종의 프로젝트로 가을방학을 꾸렸다고 한다. “우선 앨범을 내면서 한 계단 올라섰고 다음이 어떻게 전개될까 보고 있는 상태(바비)”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갓 시작된 가을방학이 이내 개학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마스터링 된 가을방학 음반을 들으며 마지막 곡까지 심장이 뛰었어요.”(바비) “이번 음반을 통해 제 목소리를 새롭게 발견한 것 같아요.”(계피)

 이렇듯 둘은 우연한 만남이 일궈낸 음악적 성과에 슬쩍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긴 바비의 성숙한 음악 작법과 계피의 맑은 음색이 맞물린 음반을 받아든 건 한국 대중음악사의 값진 열매이기도 하다. 누추한 언어로 이들의 반짝이는 음악을 일일이 풀어내기가 버겁다. 백문(百聞)이 불여일청(不如一聽)!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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