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구두 개입’… 국제 외환시장 다시 긴장 고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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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이후 해빙 무드로 접어드는 듯했던 국제 외환시장에 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일본 변수’가 돌출하면서다. 엔화 값이 사상 최고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오르자 26일 일본 정부가 엔고 대책을 내놨다. 또 구두 개입의 강도를 높이며 추가 개입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규모 개입이 현실화될 경우 환율을 둘러싼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재무성은 엔고 대책의 하나로 국제협력은행(JBIC)의 해외 투·융자 규모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의 수출입은행과 유사한 JBIC가 외화 융자를 1조5000억 엔만큼 더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달러가 시장에 더 많이 풀리게 돼 엔화가치가 더 오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효과가 나온다. 융자 폭을 늘려놓으면 JBIC는 비상시에 동원할 외화 융자금을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엔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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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조치는 G20 회의 이후에도 엔화가 상승 탄력을 받으면서 나왔다. 25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는 한때 달러당 80.4엔으로 치솟았다. 26일 도쿄시장에서도 달러당 80엔대 후반에서 움직이며 강세를 이어갔다. 1995년 4월 19일 기록한 사상 최고치(79.75엔)와 불과 1엔 차이도 나지 않는다.

 엔화가치 상승은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데다 ‘시장 결정적 환율제도’와 ‘경쟁적 평가절하 자제’라는 합의 내용이 일본 정부의 개입에 족쇄를 채웠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다.

 하지만 일본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성과 무질서한 움직임을 경계한다’는 또 다른 문구를 들어 개입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26일 오전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재무상은 “25일의 외환시장 움직임은 일방향적”이라면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시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가라시 후미히코(五十嵐文彦) 재무차관도 “개입은 불시에 이뤄져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구두 개입의 강도를 높였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 대규모 추가 개입이 실행될 경우 G20 서울 정상회의는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개입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일본은 지난달 중순 시장 개입에 대해 엔화를 특정 수준에 고정시키기 위한 게 아니라 과도한 변동성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해 왔다. JP모건 가노 마사아키 분석가는 “달러 약세가 점진적일 가능성이 높아 일본의 개입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입의 ‘약발’ 논란도 일본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지난달 중순 일본 정부는 외환시장에 하루 2조 엔을 쏟아부었지만 이후 엔화는 5% 이상 절상됐다. 엔고(高)가 기본적으로 달러 약세라는 외부적 요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는 25일 “일본은 결국 엔고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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