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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가 본 ‘서울 G20’ ⑥ 장외파생상품·신용평가사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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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어제에 이어 오늘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문제점과 이를 치유하기 위한 방안들을 설명합니다. 당시 리먼브러더스 같은 대형 금융회사가 무너지자 그 여파가 파생상품시장으로 쓰나미처럼 몰려갔지요. 그런데 정작 이런 상품들이 장외에서 거래되다 보니 거래규모조차 정확히 알 수 없었지요. 시장은 더 공포를 느낄 수밖에요. 알고 맞는 것보다 누가 때리는지도 모르고 맞는 게 더 무서운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위기에서 벗어난 뒤 장외파생상품·신용평가사·헤지펀드 규제 얘기가 나온 것은 당연한 수순이겠지요. 이 내용을 주요 20개국(G20) 홍보대사인 배우 한효주가 질문하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가 설명하는 형식을 빌려 쉽게 풀어 봤습니다. 이번 회는 남길남(통계학 박사) 자본시장연구원 파생상품실장이 답변합니다.

효주 : 박사님, 이번 G20 정상회의 의제에는 장외파생상품과 신용평가사·헤지펀드에 대한 규제가 포함돼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어떤 이들은 금융위기가 장외파생상품 때문에 일어난 거라고 하던데, 장외파생상품은 뭐고 왜 이게 문제가 된 건가요.

박사 : 금융위기의 원인을 딱 하나로 규정지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무분별한 장외파생상품 거래가 문제를 악화시킨 것만은 분명합니다. 파생상품이란 주식·금리·통화 같은 실물자산을 기초로 만들어진 ‘2차 상품’으로, 선물·옵션·스와프 등의 이름이 붙으면 파생상품이라 봐도 좋아요. 또 장외란 거래소를 통하지 않고 쌍방 간의 합의를 통해 거래하는 걸 말합니다. 따라서 장외파생상품이란 거래소 이외에서 거래되는 선물·옵션·스와프 등의 상품이라 할 수 있겠죠. 문제는 거래소를 통하지 않다 보니 어떤 사람들이 어떤 거래를, 얼마나 했는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감독기관이 파생상품의 거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G20 회의에서 이런 거래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국제 룰을 마련하기로 한 것이지요.

효주 : 금융위기의 원인이라 일컬어지는 장외파생상품엔 어떤 게 있을까요.

남길남 박사

박사 : 효주씨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란 말을 들어보셨죠? 모기지(저당) 업체가 신용이 낮은 사람(비우량)에게 주택을 담보로 시장 금리보다 조금 높은 이자를 받고 주는 대출을 뜻합니다. 이런 대출을 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모기지 업체들은 담보가 있는 대출금을 채권 형태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바로 주택저당채권(MBS)이라는 것이죠. 이때 금융회사들이 머리를 씁니다. 사실 MBS는 ‘비우량’ 대출로 만들었으니 별로 질 좋은 상품은 아닙니다. 대신 떼일 위험이 크기 때문에 수익률은 높지요. 그래서 이 채권을 수익률은 낮지만 안전한 다른 채권과 섞어서 팔면, 예컨대 끝물인 과일과 싱싱한 과일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잘 팔려나갈 것이라 생각한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품이 부채담보부증권(CDO)입니다. 이 CDO란 바구니에 신용평가사가 주는 ‘최상품’ 마크까지 떡 하니 붙였죠. 예상대로 이 CDO는 불티나게 팔려나갔습니다. 전 세계 헤지펀드나 은행에서 대규모로 이 CDO를 사들입니다.

 
효주 : 그럼 CDO라는 게 문제의 장외파생상품인가요.

박사 : 엄격히 말하면 CDO는 복잡한 구조를 갖는 채권의 한 종류입니다. 그런데 이 CDO를 거래하는 사람들은 보험이 필요했어요. 부실한 담보 때문에 채권이 부도났을 때를 대비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수수료를 내고 CDO가 부도났을 때 이를 대신 물어주는 금융상품에 가입을 합니다. 이게 신용부도스와프(CDS)라는 장외파생상품입니다. 미국 AIG의 몰락이 금융위기를 증폭시켰던 걸 기억하나요. AIG가 바로 이런 상품을 파는 보험회사였습니다. 자, 효주씨 문제 하나 내볼까요. 2005년 미국에서 금리를 올리면서 많은 사람이 대출금을 못 갚게 됐어요. 이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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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주 : 음, 사람들이 대출금을 못 갚으니 돈을 빌려준 모기지 회사가 망했겠네요. 또 모기지 회사에서 채권을 산 금융회사도 손실을 보게 될 거고, 채권 다발을 산 헤지펀드 회사와 은행들도 타격을 입었겠군요. 아 참, 채권에 보증을 서 준 보험회사도요. 와, 어마어마한 규모로까지 피해가 번진 것이로군요.

박사 : 그렇습니다. 그래서 금융위기 이후에 이렇게 복잡하고 위험한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지요. 거기에다 상하기 직전의 과일이 든 바구니에 ‘최상품’ 마크를 붙인 신용평가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이들에 대한 규제도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그리고 이참에 그동안 금융감독의 사각지대에 있는 헤지펀드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감시망 안에 두자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효주 : 구체적으로는 어떻게 규제하기로 한 건가요.

박사 : 2008년 워싱턴 G20 회의에서 장외파생상품과 신용평가사·헤지펀드 등 3개 분야에서 47개 개혁 과제가 선정돼 이들에 대한 큰 가이드라인이 마련됐습니다. 이듬해 4월 런던 정상회의에서는 보다 진전된 안이 나왔는데요, 신용평가사는 등록을 의무화하고 국제 행동강령을 따르게 했습니다. 또 장외파생상품에 대해선 중앙청산소(CCP)를 만들어 거래를 투명하게 만들자는 데 동의했지요. 청산소란 쉽게 말해 거래를 책임지고 보증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청산소를 통해 장외파생상품을 거래함으로써 거래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누구인지 신경 쓰지 않고 마음 놓고 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헤지펀드에 대해선 민간기구가 헤지펀드에 대한 모범기준을 만들고, 각국의 재무장관이 이를 평가하도록 했어요.

효주 : 그렇군요. 이번 G20 회의가 벌써 다섯 번째인데 그동안 어떤 진전이 있었나요.

박사 : 네, 지난해 9월 피츠버그 회의에서 장외파생상품 규제에 대한 진전된 논의가 있었어요. 2012년까지 표준화된 장외파생상품을 별도의 매매 체결 전문기구인 전자거래플랫폼이나 중앙청산소를 통해 거래하고, 또 이런 합의 내용의 진행 상황을 금융안정위원회(FSB)가 조사해 G20에 보고하게 했어요.

 
효주 : 그럼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G20에선 어떤 내용이 추가로 논의되나요.

박사 : 이번 경주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는 그동안 합의한 모든 금융개혁 의제를 국제적으로 일관성 있고 공통된 방법으로 이행할 것을 약속했죠.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요. 우선 장외파생상품을 규제하는 데 있어서 국제적인 협력체계를 만들어야 해요. 만약 국제적인 공조가 없으면 장외파생상품 거래가 규제가 없거나 약한 지역으로 옮겨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니까요. 또 같은 이유로 G20 회원국이 아닌 국가에 대해서는 규제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도 과제지요.

 
효주 : 네, 배경이 복잡한 만큼 할 일도 만만치 않군요. 그럼 우리나라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박사 : 우리나라는 장외파생상품·신용평가사·헤지펀드와 관련해 G20의 규제 방향에 원칙적으로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할 때 시장이 아직 크지 않아 얻을 수 있는 효과에 비해 들어가는 돈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G20에서 협의가 끝난 내용은 앞으로 시장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거래 상대방의 위험을 통제해 불투명한 거래 관행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접근한다면 우리나라도 G20 회원국들의 이견을 조율해 국제적으로 공통된 기준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지요.

 
효주 : 그렇군요. 이런 규제가 잘 합의돼 국제적으로 금융위기에 대한 면역력을 키우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박사 : 그렇습니다.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아야 큰 병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금융시장에도 검진이 필요하답니다. 그래야 금융위기가 재발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물론 금융 시스템과 자본시장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겠지요.



진수형 한국거래소 파생상품 본부장 “국제 기준 만들어야 위기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어”

‘유비무환(有備無患)’. 진수형(사진)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 본부장은 우리나라가 장외파생상품 시장에 대한 국제적 규제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내 장외파생상품 거래량은 올해 상반기까지 6853조원 규모로 선진국에 비해 작다. 또 대부분의 상품도 금리나 외환 관련 거래에 집중돼 있다. 그런데도 진 본부장은 “당장 절박한 문제가 아닐지라도 장외파생상품시장과 관련한 국제 기준을 따라 미리부터 준비해야만 위기가 닥쳤을 때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물시장을 예로 들었다. “1996년 선물시장이 개설될 당시 우리나라에 선물시장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위험 관리 기능이 있는 선물 거래의 중요성이 부각됐죠. 미리 대비한 셈입니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화되고 있어 규제 또한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다. 진 본부장은 “어떤 곳에서는 규제를 하고 어떤 곳에서는 규제를 하지 않으면 장외파생상품 시장이 규제가 없거나 약한 지역으로 옮겨가게 돼 규제의 효과가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규제 회피거래(Regulation Arbitrage)’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규제의 범위를 조절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진 본부장은 “장외파생상품을 거래하는 금융회사들이 도저히 따르기 힘든 규제를 만들어 거래 자체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낳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큰 틀에서는 국제 공조에 협력하되, 세부적인 내용에서는 우리나라의 사정을 감안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장외파생상품은 원래 쌍방의 합의에 의해 거래되기 때문에 거래 형태가 다양하다. 이런 상품 중 가장 일반적으로 거래되는 형태의 표준화된 상품은 청산 기관을 통해 결제하도록 하자는 게 ‘청산 의무화’의 취지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우리나라 자본 시장은 물론 신흥시장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진 본부장은 “신흥시장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규제는 다른 신흥시장의 장외파생상품 규제의 모범이 될 수 있다”며 “신흥시장의 사정에 부합하는 장외파생상품 규제의 선례를 남긴다면 앞으로 이들 국가에 대한 국제적인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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