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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전 '간다라 미소' 한국 발굴팀이 잠 깨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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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국 학자들이 불상(佛像)의 발생지로 꼽히는 파키스탄 간다라 유적지에서 초기 간다라 불상 50여 점을 발굴했다. 한국미술사연구소(소장 문명대 동국대 교수) 부설 한국불교미술사학회는 올 1월 28일~2월 23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서쪽으로 30여㎞ 떨어진 고대 도시 탁실라(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의 한 사원터를 발굴, 불상.동전.토기.금속품 등 총 300여 점의 유물을 찾아냈다고 6일 밝혔다.

그간 국내 학계가 몽골의 선사 유적, 러시아 연해주 발해 유적지 등 한국과 관련된 곳의 발굴에 참여한 적은 있지만 순수한 문화교류 차원에서 해외 유적을 발굴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발굴단 단장인 문명대(불교미술) 교수는 "2001년부터 파키스탄 정부와 유적 발굴을 협의해 2년 전에는 파키스탄 5대 박물관의 유물을 조사한 적이 있다"며 "이번 발굴로 한국 고고학.미술학계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찾아낸 사원터는 사방 300여m의 방대한 규모다. 1916~18년 발굴된 세계적 유적지인 조울리안 사원지에서 200m가량 떨어진 곳으로, 발굴팀은 임시로 '조울리안Ⅱ'로 이름을 지었다.

문 교수는 "이탈리아.일본 등 외국에서도 계속 유적을 발굴해 왔지만 탑원지(塔院地).승원지(僧院地)를 온전하게 갖춘 사찰을 찾아낸 건 근래 없었던 일"이라며 "해외 학계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불상들은 주로 탑 기단부(基壇部)에서 출토됐다. 동서 9.20m, 남북 9.60m 크기의 웅장한 주탑을 중심으로 12개의 봉헌탑(보조탑)에서 나왔으며, 이 중 9점은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었다. 문 교수는 "주탑 주변에서 함께 나온 동전 3점은 서기 1세기 인도 쿠샨왕조 시대의 것"이라며 "따라서 사찰은 늦어도 2~3세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4~5세기에 세워진 조울리안 사원지보다 시기가 앞선다는 것이다.

발굴된 불상은 모두 석회에 모래 등을 섞어 빚은 소상(塑像.스투코)이다. 간다라 미술에선 초기에 석불(石佛)이, 후기에 소상이 많이 제작됐으나 이번 발굴로 초기에도 소상이 활발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문 교수는 "오는 6월 추가 발굴에 나서 내년께 종합보고서를 낼 계획"이라며 "간다라 미술과 한국 불교미술의 관계를 보다 깊이 연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간다라 미술=고대 인도 북서부 간다라 지방(현재 파키스탄 페샤와르 인근)에서 기원전 2세기~서기 5세기에 융성했던 불교미술. 헬레니즘(그리스.로마)과 인도가 만나며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양식을 발전시켰다. 서기 1세기 인도 북부 미투라 지방과 함께 불상을 처음 만든 곳으로 유명하며, 학계 일부에선 경주 석굴암도 간다라 불상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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