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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다 요즘 낮잠자고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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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포스코 명예회장인 박태준 전 총리(오른쪽)가 14일 낮 중국 장쑤성 장자강시에 있는 ‘포스코스테인리스 일관제철소’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이 제철소의 중국인 고용창출 효과는 3000명이며 지난해엔 5000만 달러, 2007년엔 3억2000만 달러의 세금을 냈다.


‘전략적 인간형’은 포스코 명예회장인 박태준(83) 전 총리의 한 특성이다. 주어진 목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을 박 전 총리는 알고 있다. 박 전 총리가 전쟁에서 생존에 성공하고, 산업에서 목표를 달성한 뒤 황혼에 국가의 흥망 조건을 설파하는 동아시아의 현인으로 인정받는 건 그가 일관되게 전략적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자주 사용하는 언어는 관찰, 의문, 생각, 공부, 예측, 준비, 설계, 경험, 속도, 우선순위, 신뢰, 국익 같은 말들이다.

기자는 12일부터 17일까지 난징(南京)~장쑤(江蘇)성 장자강(張家港)시~상하이(上海)를 차례로 방문한 박 전 총리를 동행 취재했다. 10차례에 걸쳐 15시간을 대화할 수 있었다. 포스코 창업자인 그는 삼성과 현대의 창업자에게 깊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이병철 회장은 회사를 볼 때 뭘 봐야 하는지를 정확히 아시는 분이야. 한번은 포항제철을 구경하러 왔어요. 브리핑하는데 제일 먼저 재무구조를 보자고 하더군. 한참을 이리저리 따지더니 ‘박 사장, 이거 박 사장 회사네. 재무구조가 참 좋아’라고 해. 빚이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거지. 정주영 회장은 현장부터 보자고 하더군. 하하. ‘박 회장, 배 철판 만드는 공장 어딨어.’ 그래서 제일 먼저 후판공장으로 안내했지. 난 사람을 이런 식으로 파악해.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이 뭔가, 이 사람이 중시하는 게 뭔가, 그런 거지.”

-총리(박태준)께서는 이 회장 같은 재무주의입니까, 정 회장 같은 현장주의입니까.
“나는 양쪽을 다 하지. 그러했기에 포항제철이 내부적으로 탄탄해지고 성장이 빨랐던 거야. 현장과 재무, 돈 벌려고 하는 모든 사람이 놓쳐서는 안 되는 핵심 가치야. 그리고 사람이 중요하지. 사람의 마음을 훔쳐야 돼.”

-마음을 훔치다니요.
“물건을 훔치는 건 도둑질이고 나쁜 거지만 마음을 훔치는 건 좋은 거고 전략적인 겁니다. 포항제철 하면서 신일본제철의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1987년 작고) 회장이 많이 도와줬어요. 트인 사람이지. 103만t짜리 1차 고로를 성공한 뒤 그분을 만나러 갔어. 나는 그때 일본의 최신 유행가를 많이 외우고 다녔어요. 이나야마 회장이 자기 차에 나를 동승시키더니 유행가를 불러 보라는 거야(※이나야마 회장은 연령대가 박 전 총리의 아버지뻘이라고 함). 불렀더니 ‘잘했다’고 하면서 노트에 가사까지 적는다고 난리야. 그만큼 친했어. …그만큼 친해야 다 가져오지. 그런 전략을 쓰지 않고는 기술 도입이 안 돼.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훔쳐와야 기술까지, 원하는 것을 가져오는 거야.”

-규정집(제철 기술 매뉴얼 모음집)도 가져왔나요.
“규정집이야 자연히 따라오지. 그때 받은 걸 나중에 또 중국에 주라 했지. 동아시아의 발전은 돌고 도는 거야. 선진국을 중진국이 따라가고, 중진국을 또 후진국이 따라가고…그러다 후진국이 선진국이 되고, 그러는 거야.”

박 전 총리는 제철소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규정집, 도면설계, 기계 성격을 일본의 선진 제철소에서 거의 모두 가져올 수 있었다. 이나야마 회장은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제철소 현장은 어떻게든 적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들은 위에서 시켜도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세계 최고인 자기 기술을 왜 남한테 주느냐는 거였다.

-현장소장의 마음은 어떻게 훔치셨습니까.
“현장을 그냥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는 거야. 그러면 내 뒤에 따라오는 우리쪽 엔지니어들이 꼼꼼히 사방을 관찰하면서 눈으로 사진 찍듯 매뉴얼을 다 외워 버리지. 나중엔 소장이 웃으면서 항복하곤 했어. 하하.”

중국 측의 기술이전 요청에 포스코는 까다롭지 않았다. 관대하다. 박 전 총리를 수행한 정길수(61) 포스코차이나 사장은 “중국 제일의 제철소인 바오스틸의 스트럭처(구조물)는 회장님(박태준)이 만들어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중국 제철소들이 파이넥스(소결로를 짓지 않아도 되는 획기적인 공정단축 공법) 같은 포스코의 신기술을 계속 사가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박 전 총리 본인은 이렇게 얘기한다.

“보산강철(바오스틸)은 1980~90년대 덩샤오핑 중국 지도자가 지정한 국영 제철회사로 포스코에 기술이전을 요청했어요. 보산강철 사장이 와서 이 도면 달라, 저 도면 달라 했지. 다 주라고 했어. 우리 직원들한테는 ‘여러분들이 최고 기술을 만들었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거야? 줄 것은 주고 새 기술을 개발해’라고 했어요. 그거 안 주고 가만히 있으면 매너리즘에 빠져 버립니다.”

-한국은 중국이 갑작스레 커져서 생긴 외교적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미국을 먼저 방문하면 중국이 기분 나빠하고, 중국을 먼저 방문하면 미국에 미안하고. 뭐, 그런 딜레마가 없겠습니까.
“지금은, 아직까지는 미국에 먼저 가야 해. 미국이 없으면 우리나라도 없어. 6·25 때 미 20사단이 안 들어왔으면 포항전투에서 나도 죽었을 거요. 그리고 한국을 발전시킨 건 미국이야. 잘했든 못했든 문화력, 경제력, 그 영향력 밑에서 우리가 살았어.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의 원조에서 우등생이 한국이야.”

-중국이 기분 나빠 하면.
“기분 나쁘긴 뭐가 나빠. 중국이 그런 기분 느끼지 않게 (미국과의 관계를) 요란스럽지 않게 하면 되잖아.”

-결국 우리는 친미와 친중, 친일을 해서 조국을 지켜내야겠군요.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그렇게 안 하면 안 되게 돼 있어.”

-그래서인지 총리께서는 특정 나라를 별로 비판하지 않더군요.
“그런 거 해서 뭐해. 자기한테 이익이 되지 않는 얘기는 할 필요 없어. 국제정세는 선악이 아니라 국익을 기준으로 봐야 해요.”

13일 난징시 호텔에서 장쑤성 6800만 명 인구의 수장인 뤄즈쥔(羅志軍) 성장이 상무청장 등 7명을 끌고 박 전 총리에게 저녁을 대접했는데 여간 극진한 환대가 아니었다. 뤄 성장은 포스코가 장쑤성에 진출해 지역 경제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크게 고마워했다. 장쑤성 장자강시의 포스코 사업장은 3000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해마다 5000만 달러(600억원) 이상의 세금을 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뤄 성장은 박 전 총리에게 “포스코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 배상금(청구권 자금)을 어떻게 초기 자본으로 쓸 수 있게 됐는지”를 물었다. 경제성장과 지역발전에 고심하고 있는 뤄 성장이 포스코의 초기 자본집적 과정을 공부하고 온 것 같았다.

박 전 총리는 “배상자금을 조금씩 쪼개 썼다면 표가 안 났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배상금 일부를 포항제철 자금으로 통째로 쓰자고 건의했다. 만일 그때 배상금을 쪼개 썼다면 지금 국민들은 ‘그 돈, 다 어디 갔느냐’고 난리를 쳤을 것이다”고 답변했다. 제한된 자원으로 경제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자원 집중배치 방식은 박정희 시대의 특징이자 전략이었다.

이튿날 박 전 총리가 격려하러 간 장자강시의 포스코스테인리스 일관제철소의 정문에 ‘資源有限 創意無限(자원유한 창의무한)’이란 큰 글씨가 붙박혀 있었는데 이것 역시 자원집중 전략이 반영된 표어다. 대부분 중국인인 직원들은 말로만 듣던 포스코 노 창업자의 걸음걸음에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박 전 총리는 “난 철이라 그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말로 격려 연설을 시작했다. 이날 만찬을 베풀어 준 옌리(閻立·49) 쑤저우(蘇州) 시장에게 박 전 총리는 “중국의 리더십이 젊다. 옛날엔 한국이 젊었었는데 이젠 역전됐다. 한국이 굉장한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가 요즘엔 낮잠을 자고 있다. 한국에 가서 이런 사정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숙소인 상하이 샹그릴라호텔에서 대화는 이어졌다.
전략적 인간형으로서 박 전 총리의 면모는 포천→한강 이남→포항→청진→흥남→속초 전선을 오르내리던 6·25 중대장 시절 발휘됐다. 전략은 목표와 수단으로 이뤄진다. 그의 목표는 ‘부대의 생존’이었고 수단은 ‘냉철한 생각’이었다. 목표와 수단만이 그의 행동을 지배했다. 분노나 공포심·영웅주의 같은 개인적 감상은 끼어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군더더기 없는 전략전술형 인간을 추구했다.

-6·25를 포천 1연대 중대장으로서 맞았죠.
“포천이었지. 그때 내 동기 중대장이 12명이었는데 10명이 한 달 만에 죽었어. 나머지 1명도 전쟁 뒤엔 못 찾았어. 총알이 어떻게 쏟아지는지, 잠을 잘 때도 총알이 내 얼굴 옆을 휙휙 스치고 지나가는 꿈을 꿨어. 대한민국 건설하라고 하늘이 살려준 거요.”

-하늘이 도운 건 도운 거고, 총리께서 하신 일은 없습니까.
“적절하게 철수하는 게 중요해. 괴뢰군놈들 쳐내려오자 미군이 오기까진 그저 철수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철수할 때 잘해야 돼. 절대로 등을 보이면 안 돼. 뒤로 철수해야지.”

-뒤로 철수하는 게 어떤 거죠?
“반드시 1개 소대를 적 앞에 방어시켜 놓고 다른 소대들을 차례로 철수시켰지. 그렇게 해서 우리 중대를 살려냈어. ···내가 그래도 전술의 귀신이거든. ···아~전쟁 참 힘들어.”

-무섭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무섭긴 뭐가 무서워. 공포 속에선 머리가 안 돌아가. 그럼 작전을 할 수가 없어. 난 포항제철 만들 때 박정희 대통령이 열세 번 현장에 내려와도 긴장하지 않았어. 전쟁이든, 제철이든 거기선 내가 제일 잘 아니까 내 생각대로 풀어나가면 돼.”

-결국 12명 중 유일한 생존을 가능케 한 힘은 하늘의 도움 말고도 인간의 전술 같은 게 작용한 거군요.
“물론이지. 그게 70~80%지. 전술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돕나.”

헤어질 때가 됐다. 5박6일의 마지막 시간. 기자는 서울로, 박 전 총리는 도쿄로 가는 길이다. 도쿄에서 오랜 친구인 모리·후쿠다 전 총리를 만나기로 했다는 것이다.
‘노령에 너무 빡빡한 일정이 아닌가’ 묻자 그는 “일본 사정을 좀 들을 게 있다. 사람은 땅 속에 들어갈 때까지 배우는 거야”라며 싱긋 웃는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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