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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번 환율전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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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24면

세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다음 달 한국 서울에서 열린다. 환율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듯하다.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이미 서울 G20 회의를 이용해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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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회의가 환율전쟁의 중요한 마당이 될 운명이기는 했다. G20 회의 초기부터 세계 경제 불균형은 중요한 의제였다. 미국 등 무역수지 적자 국가들은 G20 마당을 활용해 글로벌 무역 흐름을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어떻게 세계 불균형을 해결할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미국 세계개발센터(CG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빌 클라인은 금융위기 이전인 2005년 “제2의 플라자합의(플라자Ⅱ)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애초 플라자합의(플라자Ⅰ)는 1985년 미국·일본·독일 등이 참여해 당시 세계 경제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엔화와 마르크화 가치는 높이고 달러화 가치는 떨어뜨리기로 한 다자간 결정이었다.

플라자Ⅰ은 당시 빅5 간의 합의였다. 무역 적자국인 미국을 비롯해 영국·프랑스·일본·독일이 참여한 단출한 회의에서 이뤄졌다. 반면 플라자Ⅱ는 20개 나라의 이해관계 퍼즐을 맞춰야 한다. 쉽게 합의가 이뤄지기 어려운 구조다.

미국은 플라자Ⅱ를 적극 지지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은 한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수 있다. 회원국 처지가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은 무역 흑자를 누리고 있지만 그리스나 영국 같은 나라들은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일본은 플라자Ⅰ 이후 거품을 경험했다. 여전히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선뜻 플라자Ⅱ를 지지하지 못할 듯하다. 게다가 일본은 중국 경제 호황의 덕을 톡톡히 보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일본처럼 쉽게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합의해주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결정하는 데 미국의 힘이 작용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한국이나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미국과 무역에서 흑자를 누리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플라자Ⅱ를 만들어낼 만큼 충분한 지지를 확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미국이 아니다. 미국은 몇 가지 카드를 쥐고 있다. 단독으로 또는 몇몇 나라의 힘을 합해 흑자국들을 거세게 압박할 수 있다. 미국은 그럴 만한 수단도 쥐고 있다. 보복이나 상계 관세를 물리거나 금융제재를 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기대한 만큼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보복이나 상계 관세를 물리면 세계무역기구(WTO) 제재를 부르기 십상이다. 미국이 용케 WTO 제재를 피했다고 하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보복관세는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C 프레드 버지스턴은 “중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만큼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 시장에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달러를 시장에 쏟아붓고 위안화를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방법도 시원찮다. 중국은 자본이 자국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 수 없도록 통제하는 나라다. 그 바람에 미국은 원하는 만큼 위안화를 사들이기가 쉽지 않다.

일부 전문가는 “중국이 미 재무부 채권을 사들이는 바람에 달러 가치가 오르고 위안화 가치가 떨어진다”며 “중국이 미 재무부 채권을 사들이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채권 발행 단계에서 중국의 매입을 막을 수는 있다. 중국의 채권 입찰을 제한하면 된다. 하지만 미 재무부 채권은 뉴욕뿐 아니라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 브라질 상파울루 등에서 거래되고 있다. 누구나 돈만 있으면 원하는 만큼 미 재무부 채권을 사들일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은 미 재무부 채권의 최대 수요자다. 두 나라가 전체 발행량의 20%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중국의 채권 매수를 막으면서 엄청난 재정적자를 견딜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경제원론에 따르면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면 수출이 늘고 수입은 억제된다. 그렇다고 모든 무역수지 적자가 통화가치를 낮춘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플라자Ⅰ 이후 일본 엔-달러 환율은 250엔(1985년) 수준에서 150엔(1988년)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만큼 엔화 가치가 올랐다. 또 95년 엔-달러 환율은 80엔대까지 추락했다. 하지만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무엇을 할 것인가(What is to be done)?
미국 정치인들은 자국 제조업체들이 국제 경쟁력을 잃어 결국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또 최근 높은 실업률은 경기침체가 주 요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적인 목적 때문에 환율전쟁을 부추기면 현재 교역환경이 주는 이익마저 사라질 수 있다.

G20 서울 회의는 세계 경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주 중요한 마당이다. 그러나 단순히 환율 문제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무역수지 적자국과 흑자국이 머리를 맞대고 포괄적인 패키지를 마련해야 한다. 환율 문제도 그 패키지의 중요한 내용물이 될 수 있다.

미국은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자국 내 저축률을 올려야 한다. 내수를 줄여 수입을 억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단순히 달러 가치를 떨어뜨린다고 적자가 해결되지 않는다.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는 자국 내 생산요소의 뒤틀린 구조 탓이다. 이자와 임금 등이 모두 낮게 유지되는 바람에 중국산 제품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G20 회의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다뤄져야 한다. 단순히 환율 문제에 집착해봐야 모두 패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리=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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