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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능 검사, 국가검진 대상에 포함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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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TV 예능프로그램에서 실제 자신의 나이보다 스무 살을 훌쩍 넘는 충격적인 ‘폐 나이’가 소개돼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병원에도 겉은 젊고 멀쩡해 보이지만 숨이 찬 증상을 호소하는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 환자들이 적지 않다. 힘겹게 진료실을 나서는 환자를 보며, 왜 좀 더 병을 일찍 발견하지 못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 질환의 주요 원인은 흡연이다. 담배 연기 등 유해물질로 인해 기도가 점차 좁아지며 마침내 호흡기능이 악화돼 돌이킬 수 없는 질환으로 진행하게 된다.

 국내 45세 이상 성인의 17.2%가 COPD로 고생하고 있다. COPD는 에이즈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네 번째 사망 원인이지만, COPD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COPD 위험군은 45세 이상 성인 흡연자들이다. 지난해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에서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COPD에 대해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은 0.4%에 불과했다.

 COPD는 일반적으로 20년 동안 하루 1갑 이상 담배를 피운 사람에게 많이 보이며, 흡연 시작 후 20년이 지나면 증상이 서서히 나타난다. 대표적인 증상은 흡연자들이 으레 그렇듯이 기침·가래·숨가쁨 등이다. 이 때문에 환자 대부분이 증세가 심해지는 것을 잘 알지 못한 채 병을 키우게 된다. 그러나 일단 한번 증세가 심해지면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식사나 세수, 옷 입기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숨을 쉬지 않으면 사람은 바로 목숨을 잃는다. 따라서 COPD의 위험성을 가볍게 넘겨서는 큰일 난다. 현재 COPD를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한 방법은 폐기능 검사다. 5∼10분 정도의 시간과 1만여원의 비용만 들이면 간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호흡곤란은 없더라도 만성적인 기침·가래 등의 증상이 있다면 40세 이상 성인은 누구나 정기적으로 폐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흔하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질환인 COPD의 발병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관심과 노력도 요구된다. 생애 전환기인 40세부터 폐기능 검사를 필수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COPD에 대해 국가와 국민이 관심을 갖는다면 폐기능 조기검진을 통해 많은 사람의 소중한 숨과 귀중한 생명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2020년이 되면 COPD가 전체 사망질환 중 3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한다. 최근 들어 폐 기능이 떨어지는 속도를 억제하거나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법이 상당한 발전을 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병을 키우는 일이 없도록 국가가 조기검진 사업 대상에 폐기능 검사를 시급히 포함시켜야 하겠다.

한성구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사장